대한민국에 이런 집이 있을까 싶다. 주소는 서울 종로구 세종로 1번지다.
서울은 강남이 최고라는데 이 집은 강북에 있으면서도 이상하리 만큼 인기다. 보통 연말이 되면 이 집엔 세입자가 되려는 임차 희망 행렬이 줄을 늘어선다. 올해는 직전 세입자가 갑자기 나가버렸다. '장미 계약'이라는 이름이 붙더니 임차 희망자들이 연초부터 몰려들었다.
이 집은 복잡한 소유권 관계 때문에 세입자만 들어와 살 수 있다. 세입자들이 떠날 때 모습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 집은 정나미가 확 떨어지는 곳이다. 모든 세입자가 이 집을 떠날 때 웃으며 떠나지 못했고, 세입자가 임대차계약이 끝나기도 전에 나가 버려 빈집 신세가 된 적도 많았다.
누가 봐도 험악하기 짝이 없는 이 집 이력을 보니 첫 번째 세입자는 당장 나가라는 집주인들의 한목소리에 '하야'라는 목소리를 내면서 이 집을 나왔다. 두 번째 세입자도 "내가 이 집의 새 주인"이라며 험상궂은 표정을 하고 갑자기 나타난 사람들에게 등 떠밀려 이 집을 떠났다.
세 번째 세입자는 이 집에서 세상을 뜨면서 그 가족들이 황망하게 집을 나서야 했다. 네 번째 세입자는 이 집에서 1년도 살지 못하고 갑작스레 옛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다섯 번째'여섯 번째 세입자는 이 집 임대 기한이 만료된 뒤 예전에 살던 곳으로 이삿짐을 잘 옮기긴 했는데 이 집에 살던 때 일으킨 문제가 들통나 체면을 구기고 큰 고초를 겪었다.
그 이후 일곱 번째, 여덟 번째, 아홉 번째, 열 번째 세입자도 이삿짐을 잘 빼긴 했는데 이 집 임대차 기한 만료 직전에 가족'형제 문제 등으로 동네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으며 고통의 시간을 보냈다.
최근엔 임대차 계약 만료 전에 갑자기 이 집을 떠나야 했던 세입자도 나왔다. 이삿짐 빼는 날짜를 지키지 못하기도 했다. 이 세입자 역시 터가 나쁘다는 얘기까지 나오는 이 집의 불행 시리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기자는 최근 몇 주 동안 이 집 세입자가 되려는 임차 희망자들을 잇따라 만나고 있다. 그들의 경력을 보니 화려했다. 말도 너무 잘했다. 원고 없이 몇 시간을 속사포처럼 얘기했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르는 것이 없었다. 이 집에 모두 어울릴 만한 사람들이었다.
5월 10일이 되면 기자가 만났던 사람 중 한 명은 이 집의 5년짜리 세입자 자격을 획득한다. 만났던 임차 희망자들은 한목소리로 "나는 다르다"고 했다. 이들의 다짐처럼 서울 세종로 1번지 세입자 이야기는 이제 극적인 반전을 이룰 수 있을까?
koala@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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