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남의 시신이 피살 46일 만에 북한에 넘겨지면서 김정남 암살 사건이 사실상 마무리됐다.
북한은 말레이시아로부터 상당한 양보를 받아낸 것으로 평가되지만, 내실을 들여다보면 '상처뿐인 승리'에 가깝다는 평가도 나온다.
북한 정권이 김정남을 살해했다는 증거만 없을 뿐 사건의 진상이 거의 드러난 데다 화학무기인 VX 신경작용제를 범행 수단으로 사용한 탓에 국제사회로부터 추가 제재까지 받을 처지여서다.
이런 가운데 이번 사건의 최대 수혜자로, 사건 이전만 해도 비리 스캔들로 정치적 위기에 놓였던 나집 라작 말레이 총리가 거론된다.
지난달 13일 말레이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는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북한의 소행으로 김정남이 살해당하는 주권 침해성 범죄가 발생한 데 대해 나집 총리는 사건 초반 강경하고 철저한 수사를 강조함으로써 부패 이미지를 희석했을뿐더러 외부의 위협에 당당히 맞서는 지도자 이미지로 지지율을 높이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지난달 20일 강철 주말레이 주재 북한 대사가 말레이 당국의 수사를 깎아내리면서 말레이와 한국이 '야합'했다고 주장하자, 나집 총리는 그걸 제대로 활용했다.
강 대사가 기자회견을 통해 김정남 사건 수사가 정치적 목적에서 비롯됐다고 하자, 나집 총리는 "외교적 무례"라고 꾸짖으면서 "어떤 압박이나 협박도 받지 않겠다"고 밝힘으로써 강한 지도자 이미지를 연출했다.
그런 나집 총리는 북한이 자국 내 말레이인들을 억류해 '인질'로 삼자, 그들의 안전 귀환이 최우선 과제라고 강조하며 협상 모드로 급격히 방향을 전환해 관심을 샀다. 속내는 국민 보호를 가장 중시한다는 이미지를 보이려는 것이었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나집 총리는 협상 과정에서 사망자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이라는 말레이 당국의 공식적인 발표를 북한이 부정하면서 평범한 북한 시민인 '김철'이라는 거짓 주장을 굽히지 않는데도 이를 묵인하고 김정남 시신을 북한에 인도하는 결정을 했다.
결국 나집 총리의 그런 결정은 말레이 당국의 부검과 수사 결과마저도 부정하는 셈이 됐다.
치외법권 지대인 북한대사관에 은신해 온 사건 용의자 현광성 북한대사관 2등 서기관과 고려항공 직원 김욱일을 석방해 북한으로 보낸 점도, 주권국가의 수장으로선 비난받아 마땅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런 정황을 종합해보면 말레이가 북한의 막무가내식 인질외교에 굴복한 셈이지만, 나집 총리는 오히려 '자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시하는 지도자'란 이미지를 구축하는 성과를 거둔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국영투자기업 1MDB에서 수십억달러의 나랏돈을 빼돌려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을 받아온 나집 총리는, 김정남 암살 사건을 통해 안팎의 공격을 일단 잠재웠다. 그러면서 올해 조기 총선을 소집해 정권을 재창출하려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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