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수길의 경북 장터 사람들] <13>영천장터 소머리곰탕 집 며느리 이순덕 씨

65년간 푹 삶고 끓여온 맛…100년을 바라보다

시어머니로부터 곰탕 비법을 전수받은 이순덕 씨와 아들 임동균 씨가 3대째 끓이는 곰탕에는 따뜻하고 끈끈한 정이 듬뿍 담겨 있다.
시어머니로부터 곰탕 비법을 전수받은 이순덕 씨와 아들 임동균 씨가 3대째 끓이는 곰탕에는 따뜻하고 끈끈한 정이 듬뿍 담겨 있다.
이수길 작가
이수길 작가

영천 장날(2, 7일)에는 인근 면에 사는 할머니들이 시골버스에 장 보따리를 싣고 새벽부터 몰려든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할머니들은 보따리를 펼쳐놓고 골목을 빼곡하게 채운다. 장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지고 들고 끌고 줄지어 이동하는 모습을 보면 마치 한국전쟁 때 피란 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영천장에는 1952년부터 국밥 장사를 해온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식당이 있다.

3대째 곰탕집을 이어가고 있는 '포항할매 곰탕'이 주인공이다. 세상을 떠난 시어머니로부터 곰탕 비법을 전수받은 이순덕(67) 씨가 아들 임동균(44) 씨와 3대째 운영하고 있다. 65년의 역사와 전통을 살려나가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조상들이 물려준 장인정신으로 고향의 맛과 어머니 손맛을 우려내는 전통을 잇는 일은 문화를 이어가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주 메뉴는 소머리곰탕, 소머리곰탕 수육, 도가니탕, 우랑탕(소생식기)으로 요즘엔 귀한 봄철 보양식인 우랑탕이 많이 나간다.

대구가 고향인 이순덕 씨는 21세 때 부모님의 권유로 영천 시골 국밥집 아들과 결혼했다. 2남 1녀를 낳아 기르며 국밥집 며느리로 전통을 잇는 역할에 충실했다. 자갈밭 가건물 다락방에서 토끼잠을 자면서 국밥을 파는 고된 생활이 이어졌다. 가마솥을 걸고 장작불을 때 곰탕을 끓였다. 가까이 우시장이 있어 소 팔러 온 사람들이 아침부터 많이 찾아왔다. 맛있다며 두 그릇씩 먹고 가는 사람도 많았다. 이 씨는 "장남이 3대째 대물림했는데 4대 손자도 합류해 100년의 역사를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배고픔을 달래주는 장터의 국밥 한 그릇. 국밥 장인으로 살아온 조상님의 뜻을 받들어 모시는 이들의 모습에서 진한 가족애를 느낄 수 있었다. 가업을 대대로 이어가는 투철한 정신에 곰탕의 맛도 더욱 깊어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아들 임 씨는 "어머니는 평생 뛰어넘을 수 없는 스승"이라며 "곡식이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듯이 겸손한 자세로 국밥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65년 동안 푹 삶고 끓여온 정성과 따뜻하고 끈끈한 정이 만든 곰탕 맛, 대한민국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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