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每日 칼럼] 나는 선거가 두렵다

"정치인은 어디서나 다 같다. 그들은 강물이 없는데도 다리를 놓아주겠다는 공약을 내놓는다."

소련 공산당 서기장 흐루쇼프는 정치인이 유권자의 환심을 사기 위해 선심 정책을 남발하는 것을 이렇게 빗댔다. 그의 평은 정치인에 대한 야유에 다름 아니다.

다시 선거철이다. 자고 나면 공약이 쏟아진다. 공공 일자리 창출, 기초연금 인상, 아동수당 신설, 최저임금 1만원까지 인상, 실업급여 확대 등. 공약집은 공약 백화점에 가깝다. 대선 후보들이 국민을 위해 하고 싶은 일이 이토록 많았다니 그저 놀랍다.

그렇다고 정치인들이 공약을 다 지키면 우리나라는 천국이 될까. 솔직히 그럴 것 같지 않다. 선거 공약을 보면 반갑기보다 걱정이 앞선다. 나랏빚은 1천433조원을 넘었다. 몇 번의 대선을 치르면서 증가 속도는 가파르다. 그런데도 국가 미래를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자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오직 '해주겠다' '더 주겠다'는 소리가 입에 발렸다. 표심을 얻을 수 있다면 나랏돈 수십조원 쓰는 것쯤 우습다.

당선 가능성이 높을수록, 그래서 표와 사람이 몰릴수록 공약은 더 현란하다. 문재인 후보의 공약이 대표적이다.

문 후보의 1순위 공약만 짚어보자. 문 후보는 공공 부문 일자리 81만 개 창출을 약속했다. '일자리 확대'가 '국민께 드리는 최고의 선물'이란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 대통령 후보 선거 공약 코너에 들어가면 누구나 확인할 수 있다. 당선되면 즉각 10조원 이상을 일자리 창출에 쓰겠다고 했다.

대졸 실업자는 54만 명, 고졸 실업자는 45만 명을 넘었다. 공공 부문 일자리 공약은 솔깃할 수 있다. 고만고만한 일자리만 얻어도 감사할 일인데, 공직으로 해소하겠다니. 그렇지만 이것이 과연 국민에게 '최고의 선물'일까.

한국납세자연맹이 밝힌 지난해 우리나라 공무원 평균 연봉은 5천990만원이다. 이는 2014년 연말정산을 한 근로자 1천668만 명 중 상위 14%에 해당하는 연봉이다. 공공 부문 일자리 81만 개가 늘어나면 '5년짜리 문 대통령'이 물러난 후 머잖은 시기에 현재의 평균 연봉만 잡아도 한 해 48조원을 이들의 인건비로 써야 한다. 올해 우리나라 공무원 인건비는 34조원이다. 국가 경제가 인건비를 지속적으로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의문이다. 그나마 수십 년 후로 미뤄질 연금 재정은 논외다.

공무원 일자리 공약은 공무원 시험 준비생들에게 핑크빛 환상을 심어준다. 너도나도 공무원이 될 수 있다고 믿게 된다. 기업 일자리를 포기하고 오직 공무원 시험에만 매달리고 있는 준비생이 지난해만 25만7천 명에 달했다.

청년이 공직만을 믿고 정치가 이를 부추겼다가 망한 나라를 우린 여럿 봤다. 그리스는 1980년대 이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청년 실업 상당수를 공공 일자리로 해결했다. 30만 명 수준이던 공무원 수는 환란을 맞은 2010년 95만 명으로 확대됐다. 국가 재정은 파탄 났고 이제 깎인 연금 지급조차 불투명하다. 그리스 야당인 신민당의 게오르간타스 의원은 "공공 일자리가 청년들의 최고 목표가 되면서 그리스의 꿈이 사라졌다"고 절규한다.

중남미 포퓰리즘의 대명사 아르헨티나도 마찬가지다. 20세기 초 세계 10대 부국에 들던 아르헨티나는 1950년대 대량 실업 사태가 터지자 실업자를 전원 공무원으로 채용하는 일자리 정책을 펼쳤다. 당장은 국민들에게 인기였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결국 국고만 바닥내고, 경제는 곤두박질쳤다. 아르헨티나의 악몽은 아직까지 수시로 되풀이되며 국민을 괴롭히고 있다.

세금으로 청년 일자리를 해소하겠다는 것은 언 발에 오줌 누기다. 일시적 처방은 될지 모르나 지속적이지 않다. 문 후보의 공공 부문 일자리 창출 공약은 국민에게 '최고의 선물'이 아니라 독배가 될 수 있다. 그것도 마시면 단번에 표가 나는 그런 독배가 아니다. 서서히 나라를 골로 보낼 수 있는 그런 독배다. 나는 독배가 국민을 위한 선물이 되는 그런 선거가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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