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대 대통령 선거 전까지 투표할 기회가 많았지만 정치에 무관심했기에 직접 참가한 기억은 두 번뿐이다. 유이한 투표 모두 대통령 선거로, 선택한 두 사람은 대통령으로 이름을 올렸다.
스스로 선택한 첫 번째 대통령은 제13대 노태우다. 군 복무 때였다. 군부 출신인 제12대 전두환 대통령의 바통을 이어받은 노태우는 1987년 12월 16일, 16년 만에 시행된 직선제 선거에서 당시 뜨겁게 달아올랐던 민주화의 열기를 잠재우고 최고 지도자의 자리에 올랐다. 군부 통치 청산과 문민 통치 실현이란 국민적 염원이 좌절됐다는 게 후세의 평가다.
제13대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 1987년은 대통령 후보였던 노태우 민주정의당 대표위원이 국민의 민주화와 직선제 개헌 요구를 받아들여 6'29선언을 한 해로 민주화의 열기가 뜨거웠다. 하지만 강원도 최전방 철책사단에서 복무하고 있었던 터라 민주화 열기는 남의 일로 여겨졌다. 휴가 때 일시적으로 민주화 분위기를 접했지만, 군인이란 신분 때문에 그 열기에 빠져들지 못했다. 비무장지대에서 북한 방송을 통해 당시 전두환 대통령과 노태우 후보에 대한 입에 담지 못할 욕을 수시로 들었기에 대통령 선거에서 주저하지 않고 노태우를 찍었다. 대한민국을 지키는 군인이 우리의 주적인 북한이 욕하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선택한 건 당연한 판단이었다.
두 번째 투표에서 선택한 대통령은 제18대 박근혜다. 노태우와 박근혜 사이에 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이 제14~17대 대통령을 지냈지만 투표하지 않았다.
박근혜는 왜 투표했느냐. 보수의 집산지로 불리는 대구경북(TK)에서 기자로 활동하면서 나름 보수에 물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대구경북은 부산 출신인 김영삼과 호남인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은 김대중'노무현 정권 시절 찬밥 신세로 전락했다. 이 기간 대구는 정권의 외면으로 위천 국가산업단지 조성과 삼성 상용차 유치에 실패, 경제 기반을 다지지 못했다. 유니버시아드대회,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등 대규모 국제 스포츠대회의 유치'개최에도 애를 먹었다. 경북 동해안과 북부 지역의 교통 인프라 등 사회간접기반시설 구축도 외면받았다. 이런 걸 지켜봤기에 18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명박의 보수 정권이 단명에 그치지 않기를 바랐고, 선거일 오후 호남 지역의 투표율이 높다는 뉴스를 듣고 투표장으로 향했다.
현 시점에서 되돌아보면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권리이자 책임인 선거를 번번이 외면한 것도 부끄럽지만 두 번의 잘못한 선택에 고개를 숙인다. 두 번 모두 소신 투표를 했다고 자부함에도, 내가 뽑은 대통령이 잘못을 저질러 검찰에 구속되는 결과를 지켜봐야만 했다. 이를 교훈 삼아 9일 치러진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낮은 낙선할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 마음속으로 현재가 아닌 미래를 향해 투표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그러나 다수의 우리 국민은 현명하게 각자의 표를 행사, 문재인 대통령을 뽑았다. 이번 대통령 선거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찬바람 부는 12월이 아닌 장미꽃 피는 따뜻한 봄에 치러졌다. 계절의 변화만큼이나 이번 대선이 우리나라의 정치 풍토를 혁신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더는 TK 대통령, 호남 대통령이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달렸다. 그가 임기 동안 전국구 대통령으로 자리매김하면 다음 대통령 선거의 풍토는 달라질 것이다. 정치와 선거 제도 특성상 지역과 세대 갈등은 피할 수 없겠지만 과거에 매몰한 우리 유권자들의 선거 행태는 바람직하지 않다. 지역과 이념에 따른 편 가르기, 이분법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대한민국의 미래를 똑바로 책임지는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갈기갈기 찢긴 우리 국민의 아픔을 잘 치유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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