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의 발걸음이 가볍다. 집권 2주차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잘할 것'이란 응답이 87%에 달했다. '잘못할 것'이란 응답은 7%에 불과했다. 대선서 41%의 지지를 얻었던 불안과 우려를 상당 부분 털어냈다. 반쪽짜리 대통령이 될 줄 알았더니 온 국민의 기대를 안고 간다.
발걸음을 가볍게 한 것은 대통령 자신이다. 박수받을 일만 골라서 하고 있다. 그것도 속도전이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 수사를 맡았던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을 부산고검 차장검사로 좌천한 것은 절묘했다. 고등검사장급을 고검 차장검사로 발령 낸 것부터가 유례를 찾기 힘든 신의 한 수다. 일부 반발 움직임도 있다지만 검찰이 자초한 일이다. '풀은 바람이 불어야 눕는데, 바람이 불기도 전에 눕는다'던 검찰 아닌가. 최근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 90%에 달하는 국민이 검찰 개혁이 필요하다는 반응을 보였으니 검찰로서는 달리 할 말이 없다. 여론이 등을 돌리면 반발은 부질없다.
불통과 무능의 이미지로 덧칠된 전 대통령의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모습 역시 새롭다. 구내식당에서 배식판을 들고 줄을 선 대통령은 영락없는 보통 사람 문재인이다. 점심 식사 후 비서진과 테이크아웃 잔에 담긴 커피를 들고 정원을 거닐며 담소를 나누는 것은 신선하다. 경호상의 이유를 대며 구중궁궐에 갇혀 있어야만 하는 줄 알았던 대통령이 저렇게도 하는구나 싶을 정도다. 문 대통령은 "주요 사안은 직접 브리핑하고 퇴근길에 마주치는 시민과 소주 한잔 나누겠다"고 했다. 이러다가 퇴근길 선술집에 들러 소주잔을 마주하고 시민과 담소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기대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인사도 술술 풀어나간다. 경제부총리 후보자로 대통령과 개인적 인연이 없는 인물을 지명했다. 역시 아무런 인연이 없는 비외시 출신의 여성을 외교부장관 후보자로 뽑았다. 청와대 정책실장엔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를 지원했던 장하성 교수를 지명했다. 탕평 인사 조짐이 확연하다. 박지원 국민의당 전 대표의 "깜짝깜짝 놀라게 잘한다"는 칭찬이 공치사가 아니다. 친문 패권주의 논란을 몰고 왔던 측근들이 잇달아 백의종군을 선언한 것도 그렇다. 측근 중 측근이라던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은 백의종군을 선언했고 이호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아예 대통령 취임 당일 해외로 출국했다. '실세를 두지 않겠다'는 의지가 확고하다.
걱정도 있다. 이제 시작이란 점이다. 시작은 누구나 그랬다. 그래서 걱정이 가시지 않는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가는 곳마다 시민들이 함께 셀카를 찍자며 모여들던 시절이 있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집권 초 금융실명제 실시, 하나회 척결 등으로 지지율이 80%대까지 올랐다. 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한때 국정 수행을 잘할 것이란 전망이 문 대통령보다 많은 89.1%에 달했었다.
지지율이 치솟으면 정권은 오만해진다. 여론을 등에 업으면 무슨 일을 해도 괜찮을 것 같지만 정권이 오만해졌다고 생각하는 순간 여론은 차갑게 식는다. 역대 정권이 시작은 화려했지만 늘 끝이 안 좋았던 것은 반면교사로 삼을 일이다.
앞길은 문 대통령의 선택에 달렸다. 새 정부가 북한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는 다시 퍼주지 않거나, 북핵과 미사일을 용인하지 않는 한 환상이 될 것이다. 섣부른 개성공단 재개 시도는 국내적으로는 물론 대북 제재에 동참한 국제사회와의 충돌을 예고한다. 사드 배치 비준을 두고서는 여야가 입장을 바꿔 격돌할 것이다. 일자리 추경도 국회 동의를 얻지 못한다면 공염불이다. 첫 내각 인선은 청문회를 거쳐야 한다. 강성 노조와 진보단체는 더 큰 날개를 달고 보수 세력과 이념적으로 부딪칠 것이다.
대통령은 시작할 때가 아니라 퇴임 후에 평가를 받는다. 문 대통령은 이를 유념해야 한다. 시작은 좋다. 그렇다면 이제 끝이 좋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문재인정부가 명분과 이념에서 벗어나 실용정부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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