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총리'외교장관 내정 헌법 위배
서울중앙지검장 강등은 법 무시
비정규직 제로화 비판하던 재계
토론 얘기하던 대통령에 혼쭐나
새 정부가 출범하고 20일이 됐다. 청년 시절 주사파 이력을 가진 젊은 전직 의원이 대통령 비서실장이 됐고, 진보주의자를 자처하며 정치판에 이리저리 훈수를 놓던 법대교수가 학기(學期) 중에 민정수석이 됐다. 권력이 바뀐 게 실감 나지 않아선지 야당은 별다른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국가안보실장에 통상업무 전문가인 외교관을 앉혀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그건 대통령이 비서를 임명하는 것이니 야당이 시비 걸 일은 아니다. 그런데 국무위원 지명은 다른 문제다. 책임총리를 한다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낙연 총리지명자 인사청문회도 열리기 전에 경제부총리와 외교장관 후보자가 내정됐다. 아무리 급해도 그렇지 곧 물러날 부총리가 제청하는 형식을 취한 것이니 이건 전(前) 정부들처럼 헌법취지를 위배한 것은 물론 헌법 문언(文言)을 정면에서 어긴 것이다. 그런데도 야당은 별다른 말이 없다.
그뿐이 아니다. 간 크게 돈 봉투 회식을 벌였다가 감찰대상이 된 서울중앙지검장을 강등시키고 그 자리에 윤석열 고검검사를 파격적으로 승진시켜 앉혔다. 전(前) 정권에서 시련을 겪었으니 그럴 만도 하겠다 싶었는데 문재인 대통령은 임명 이유로 국정 농단 사건 재수사와 공소유지를 직접 언급했다. 특검에서 '삼성 뇌물죄'를 집요하게 판 수사팀장을 중앙지검장으로 임명한 속내를 솔직히 드러낸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 강등과 임명절차는 검찰청법을 그냥 무시해버린 처사다. 청와대는 쫓겨난 법무차관에게서 떠나기 직전 제청을 받아 임명조건을 갖췄다고 하지만 궁색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야당은 묵언수행(默言修行) 중이다. 정말이지 단단히 주눅이 든 것이다.
솔직히 대통령의 '공소유지' 목적이란 말에 번쩍 정신이 들었다. 아, 새 정부에게 지금 막 시작된 박근혜 전 대통령 재판은 '아킬레스건(腱)'이 되어 있구나. 그녀가 받고 있는 18개 혐의 중에서 뇌물죄야말로 그녀를 천상(天上)에서 지옥으로 끌어내린 갈고리다. 그녀는 '엮어도 너무 엮었다'며 아낙네의 문법으로 항변했지만 세상은 외면했다. 특검의 뇌물죄 수사를 검찰이 받았고 그녀는 구속됐다. 지난주 그녀는 수갑을 찬 채 법정에 나왔다. 만약 뇌물죄가 무죄로 판명된다면 만천하에 차가운 금속재질의 수갑을 찬 모습으로 각인된 그녀의 구속은 정당성을 잃게 된다. 그것이 어찌 새 정권에 타격이 되지 않겠는가? 그날은 부패혐의로 수사를 받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기일(忌日)이었다. 한쪽에서는 비극적인 장면이 펼쳐지는 동안 다른 쪽 추모식에서는 비로소 신원(伸寃)을 이뤘다는 비장함이 흘렀다. 이 기막힌 오버랩은 누가 연출한 것이 아니다.
어쨌든 세상이 바뀌었다. 법정에 선 전직 대통령도 벌써 세인의 관심 밖이다. 오히려 '3무(無)'의 변화를 보여준 청와대 수석 보좌관회의가 더 화제다. 정해진 결론과 받아쓰기, 서열을 없앤다는 3무 중에서 적어도 앞의 둘은 너무 당연한 것들이다. 받아쓰기는 박근혜정부 내내 수석비서관회의와 국무회의에서 벌어졌던 진풍경이었다. 그걸 없앤 게 뉴스가 된 것이다. 대통령이 비서들과 커피를 마시며 담소하는 것이 뉴스가 되는 것 역시 같은 이치다. 박 전 대통령과 정반대의 모습만 보이면 문 대통령의 인기가 오르는 것이다. 그런데 3무의 의미인 '청와대의 민주화'가 과연 대통령의 뜻대로 될 것인가? 받아쓰기만 안 한다 뿐이지 누가 감히 대통령의 뜻을 꺾을 수 있겠는가? 대통령이 노타이 차림에 윗저고리를 벗고 앉자 일제히 같은 차림을 하는 비서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런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또 하나의 시금석(試金石)은 이내 나왔다. 문 대통령이 천명한 '비정규직의 제로화'를 두고 재계와 새 정부가 충돌한 것이다. 아니, 재계가 겁 없이 대들다 납작 엎드렸다. 전경련 대신 재계를 대표하게 된 경총 부회장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정책에 '무조건 비정규직은 안 된다는 건 현실에 안 맞다'며 비판하자 서슬 퍼런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위원장과 대변인이 '반성은 못할망정 편협하다'며 받아친 것이다. 그만해도 될 것을 대통령이 나서 경총은 비정규직으로 인한 사회양극화를 만든 한 축이라며 '진지한 성찰과 반성이 먼저 있어야 한다'고 아주 혼쭐을 냈다. 솔직히 나는 이 과정을 지켜보면서 충격을 받았다. 자신의 비서들에게 결론을 정하지 말고 서열도 젖혀두고 토론하자던 대통령이 아니던가? 그런데 그건 어디까지나 대통령의 권위에 순종하는 비서들에 국한된 모양이다. 아니면 같은 편에게만 적용되는 법칙일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바뀐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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