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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사람] 시집 '마을 올레' 이동순 계명문화대 특임교수

텅빈 농촌, 노인들과 나눴던 얘기와 가락

가요 해설사로 널리 알려진 이동순 시인은 아코디언 연주가로도 유명하다. 매일신문 DB
가요 해설사로 널리 알려진 이동순 시인은 아코디언 연주가로도 유명하다. 매일신문 DB

평론가, 가요 해설사, 교수, 방송 진행자….

이동순 계명문화대 특임교수의 이력서엔 여러 직함들로 빼곡하다. 모두 재능을 따라서 하다 보니 생긴 직함이지만 그가 평생 매달린 것은 시(詩)다. 신춘문예 등단도 시였고, '개밥풀' '물의 노래' '미스 사이공' 등 무려 15권의 시집도 펴냈다. 민족서사시 '홍범도' 10권을 포함하면 전체 저서 54권 중 절반이 시집이다. 그가 시집 '마을 올레'를 펴냈다. '마왕의 잠'이 당선돼 문단에 나온 지 44년 만에 16번째 시집이다.

◆방송 프로 진행하며 틈틈이 시작=이 시인은 197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후, 다양한 삶의 이력과 풍경을 담백한 시어로 풀어 왔다. 이번 작품에도 등단 40년을 훌쩍 넘긴 시인의 무심한 듯 섬세한 눈길이 곳곳에 드리워져 있다.

이번 시집은 대구 KBS TV '행복발견'의 '마을 올레' 진행자로 다니면서 떠오른 시상들을 정리한 것이다. 저자는 "15개월 동안 63곳을 매주 탐방하며 시를 생산해냈다"며 "이번 58편의 시는 그동안 달려온 발자국의 장엄한 기록"이라고 자부하고 있다.

말로만 듣던 텅 빈 농촌, 노약자들만 남아 있는 마을회관에서 현지 주민들과 손을 맞잡고 가슴속에 갈무리된 이야기를 들었고 고단하고 힘겹게 살아온 민초(民草)들의 사연을 온몸으로 껴안았다. 방송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차량 뒷좌석에서 시인은 취재 단상(斷想), 애잔한 감동을 메모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해서 탄생한 58편의 시가 이 시집에 담기게 됐다.

작품에서 시인은 삶 이면에 침묵하고 있는 스토리에 주목하고 있다. 퇴락해가는 농촌 공동체 속에서 저자가 발견한 것은 여전히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었고, 그 사람들이 꽁꽁 감춰두었던 삶의 '내력들'이었다. 시인의 눈에 그것들은 '행복'이라고 말해질 것들이 아니었다. 마을 공동체가 기억하고 있는 것들은 크고 작은 상처의 얼룩이자 아픈 기억들이었다.

◆잊혀 가는 정신문화 시로 복원=경북 김천 출신인 시인은 일찍 어머니를 여의었다. 이 시인의 모든 글쓰기 배경에는 어머니가 그림자처럼 등장한다. 시인 정호승은 "그의 시집은 고향으로 가는 길"이라며 "시에서 배어 나오는 모성의 향기가 당신의 인생을 포근하게 안아주고 있다"고 평하고 있다.

목화다방을 아시나요/ 상주 은척 면소재지 장터 끝에서/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숨어서 빠끔히 내다보는/ 간판 하나가 걸려 있는데요/ 거기 쥔 마담은/ 한 자리에서 사십 년 넘도록/ 시골다방을 지켜 왔대요/ 봄바람 가을비가 몇 번이나 지나갔나/ 어느 틈에 회갑을 넘겼다며/ 배시시 웃는 마담 눈가에/ 잔주름이 오글오글 돋아나네요-'목화다방' 하략

여행 중 만나는 모든 사물과 에피소드는 그의 시재(詩材)가 된다. '목화다방'에서는 1960, 70년대 도회지 다방의 아날로그 감성을 수채화처럼 그려내고 '성찬이 형제'에서는 이제 일상이 돼버린 다문화가정의 일상을 담백하게 풀어내고 있다.

저자는 여행을 통해 잃어버린 고향을 복원시키고 풍속을 재현했다. 잊혀 가는 우리의 문화와 정신적 유산까지 현재화시켰다. 시인 박성우는 "시인의 발품과 가슴과 맑은 눈이 아니었다면 사라질 귀한 역사 문화를 시인의 맑은 시심(詩心)으로 길어 올렸다"고 평가했다.

◆대중가요'시어로 민초 아픔 치유=이 시인이 기록한 '사무치는' 내력들은 우리 근현대사의 굴곡진 역사가 남긴 상처들이다. 산업화가 부른 이농현상일 수도 있고 고령화로 인한 인간소외일 수도 있다.

흘러간 날/ 남의 집 머슴살이하느라/ 가슴이 썩은 박속처럼 내려앉았다던/ 불쌍한 우리 영감님

객지 사는 막내딸/ 어제도 왔다가 같이 누워서/ 갈고리같이 휘어진 이 어미 손 잡더니

제 뺨에 부비며 서럽게 웁디다/ 자두꽃은 만발했는데/ 저는 구부러진 손가락으로

영감님 사진 쓸고 또 쓸고 어루만지다/ 기어이 그 위에 눈물 떨굽니다 -'자두꽃'

그 상처들은 어떤 식으로든 치유되고 위로되어야 한다. 시인은 소명은 침묵하고 있는 상처들의 내력을 낱낱이 들어주며 그것들의 아픔을 따뜻한 시어로 치유하고 있다.

이 시인은 자타가 공인하는 '대중가요의 전설'이다. 레퍼토리만 500곡이 넘고 소장하고 있는 악보 LP, SP도 몇 수레는 된다고 한다.

저자는 시집 서문에서 '마을 탐방 때마다 (어르신들과) 장구와 아코디언으로 신명을 나눴다'고 적고 있다. 이때 나눴던 가락이 문자가 되어 시집을 차곡차곡 메워 갔던 것이다. 153쪽 8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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