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꿈의시베리아 횡단열차] (상)모스크바 메트로

역사마다 화려한 벽화'천장화'샹들리에 조명…'지하궁전'이라 불려

방호시설 역할 지하 100m 깊이

지상→승강장까지 3분이나 걸려

대구와 달리 화장실'휴지통 없어

역 이름은 목적지 지명이 붙어

야로슬라블 가려면 야로슬라블역에

안내 방송도 도심'외곽 남'여로 구분

드디어 모스크바에 도착했다. 노보시비르스크 오보강 유역을 따라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2박 3일 동안 52시간을 달려온 끝이다. 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타고 도착한 야로슬라블역은 무릎까지 쌓인 눈과 뼛속까지 파고드는 칼바람이 매서웠다. 모스크바는 면적이 878.7㎢나 되는 거대한 도시이다. 산이 보이지 않는 넓은 평원이 눈으로 덮여 있어 조용한 눈의 왕국처럼 보였다. 러시아의 수도이자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인 모스크바는 처음 찾는 여행객들에게는 도착하기 전까지 저마다의 선입견과 편견으로 내내 긴장하게 만드는 곳이기도 하다. 냉전시대가 끝난 지 오래됐지만, 아직도 러시아나 모스크바라고 하면 낮게 깔린 구름과 어두운 표정의 사람들이 떠오른다. 하지만 실제로 러시아는 광활한 크기만큼 다채로운 표정을 지닌 나라다. 특히 모스크바는 중후하고 고풍스러운 분위기에 문화예술의 기운이 넘치는 도시이다. "러시아 사람이라면 누구나 모스크바를 어머니처럼 느낀다"는 톨스토이의 말처럼 푸근함마저 느껴지는 도시. 개혁의 심장인 모스크바에서 활기찬 러시아를 만날 수 있다.

모스크바에는 9개의 주요 기차역이 있으나 정작 모스크바역은 없다. 러시아의 역 이름은 목적지 방향 이름으로 불리기 때문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가는 열차를 탑승하기 위해서는 레닌그라드역으로 가야 하는데 이는 상트페테르부르크가 소비에트연방이 해체되기 전까지 레닌그라드로 불렸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도착한 역은 시베리아횡단열차의 모스크바 시발역으로 야로슬라블, 노보시비르스크, 이르쿠츠크, 블라디보스토크 등 북동쪽으로 가는 열차를 탈 수 있는 곳이다. 처음엔 이상했지만 몇 번 타보니 기발한 발상과 합리적인 사고의 걸작이란 생각이 들었다. 낯선 이국땅의 크고 복잡한 기차역에서 기차를 잘못 타서 여행을 망치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러시아에서는 일단 역을 찾아가기만 하면 된다. 목적지 지명을 모르고 가는 경우는 없을 테니 역을 잘못 찾아가는 실수를 할 확률은 아주 낮다. 대부분의 기차역 내에서는 무료로 와이파이와 짐 보관소를 비롯해 안내소, 유료화장실, 통신사, 카페, 레스토랑 등 다양한 서비스 시설이 있다.

모스크바의 시내교통은 크게 지하철인 메트로, 버스, 그리고 트램과 트롤리버스와 미니버스인 마르쉬루트카가 있다. 마르쉬루트카는 우리의 마을버스와 비슷하다. 유명한 모스크바의 교통체증을 감안하지 않더라도 여행객들이 이용하기에는 메트로만큼 좋은 교통수단이 없다. 모스크바의 명소 중 하나가 지하철역인 메트로역이다. 메트로역은 경관이 너무 아름다워 '모스크바의 지하 궁전'이라 불린다. 지하철 역사는 박물관에 버금갈 정도로 화려한 벽화와 천장화가 그려져 있다. 또 많은 조각품과 눈길을 사로잡는 조명 샹들리에가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1935년 개통된 모스크바 메트로는 12호선까지 운행되고 있다. 하루 1천만 명을 싣고 다녀 모스크바 시민의 발로 자리 잡고 있다. 짧은 일정으로 여행하는 사람들은 메트로를 이용할 기회가 거의 없다. 하지만 모스크바의 속살을 보고 싶다면 반드시 메트로를 타보라고 하고 싶다. 모스크바 메트로는 노선에 따라 오래되어 낡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로 타보면 예전의 악명 높은 모스크바 메트로에 대한 편견을 버려도 좋을 만큼 깨끗하고 편리한 시스템에 감동하게 될 것이다. 처음 접하는 사람이라면 엄청나게 빠른 에스컬레이터 속도에 당황하게 되고, 빠른 배차시간에 또 한 번 놀라게 된다. 러시아 알파벳이나 메트로 행선지와 방향에 낯선 여행객은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메트로가 두렵게 느껴질 수도 있으니 사전에 미리 정보를 익혀 두면 메트로 이용이 아주 쉽고 편리하다.

모스크바 메트로는 냉전시대에 전쟁 대피 방호시설 역할을 대신했기 때문에 지하 100m 이하로 깊게 만들었다고 한다. 지상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메트로 승강장으로 내려가는 데만 3분여가 걸린다. 특이한 점은 우리나라 도시철도와 달리 지하철 역사에 화장실과 휴지통이 없다는 점이다. 또 환승역의 이름이 몇 개 역을 제외하고는 내린 역과 갈아타는 역 이름이 서로 다르다. 여행객들은 모스크바 메트로를 타기 전에 반드시 가고자 하는 목적지의 노선도를 꼭 확인해야 한다.

또 흥미로운 점 중 하나는 메트로 안내 방송의 목소리가 다르다는 점이다. 시내 중심으로 진입할 때와 시계 방향으로 가는 열차 내에서는 남자 목소리로, 중심에서 외곽으로 나가는 방향과 시계 반대 방향으로 갈 때는 여자 목소리로 안내 방송을 한다. 목소리만 듣고도 방향을 알 수 있도록 승객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인상적이었다. 메트로 운행은 오전 5시 20분부터 새벽 1시까지이며 보통 배차간격은 2, 3분이지만 출퇴근 시간에는 1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표는 종류가 다양하고 저렴하다. 1회권 50루블, 5회권 180루블, 1일 무제한 210루블, 3일 무제한 400루블 등 다양하게 있으므로 여행자들은 여행계획에 맞게 구입할 수 있다. 모스크바 지하철은 개찰구에 표를 터치해야 문이 열린다. 2회권 이상 구입했다면 한번 터치하면 남은 잔여 횟수가 표시된다. 일단 개찰구만 통과하고 나면 어느 역에 내리건 상관없는 단일 요금제이다. 출구로 나갈 때는 표가 필요 없으니 그냥 통과하면 된다.

모스크바 메트로는 거의 모든 역이 가운데가 승강장인 섬식으로, 양쪽으로 열차가 다닌다. 타는 방향 벽에 붙어 있는 안내 노선도 표지판에는 최종 목적지가 아니라 현재 정거장부터 가는 방향 쪽의 정거장이 모두 표시되어 있다. 가는 방향과 목적지를 구분하는 데 도움이 된다. 안내표지판에는 영어 표시가 전혀 없어 러시아어 알파벳을 모른다면 이용하는 데 약간의 불편이 있을 수 있다. 모든 환승역과 갈아타는 곳 바닥에 출구표시가 되어 있어 큰 불편은 없을 것 같다.

메트로 이용이 다소 불편하지만 비싼 택시와 교통 체증을 감안하면 주머니가 가벼운 여행자들에게는 아주 좋은 교통수단임에 틀림이 없다. 덤으로 아름다운 문화궁전 같은 메트로를 구경하는 재미는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된다. 보안이 심한 메트로에서 사진을 찍을 때는 메트로 경찰의 안내를 받고 찍어야 한다. 경찰 안내 없이 찍으면 제지당하거나 불려가서 사진을 지워야 한다. 나도 '세계 최고 대구모노레일' 깃발을 들고 찍다가 혼이 나고 결국 사진을 모두 지워야만 했다.

아름다운 메트로를 구경하기 위하여 마야콥스카야, 콤소몰스카야, 키에프스카야, 아스밭스카야, 혁명광장역 등을 차례로 가 보았다. 아름다운 역을 바라보니 러시아의 예술적 성숙도와 저력을 느낄 수 있었으며, 내가 본 메트로역 중에서 개인적으로는 콤소몰스카야역이 가장 아름다웠다.

ymahn1102@hanmail.net)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