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초 한 의료봉사팀이 울릉도를 찾았다. 충남 당진에 있는 당진종합병원 의사와 직원들이었다. 서해에 접한 지역의 의료진이 팀을 꾸려 국토 동쪽 끝 울릉도를 찾은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러나 울릉도는 쉽게 곁을 주지 않았다. 바다 날씨가 나빠져 여객선이 운항을 중단하는 바람에 17명의 의료팀은 울진 후포항 인근에서 이틀을 기다렸다. 의료팀은 소중한 시간을 쪼개 나선 길인 만큼, 포기하기보다는 조금만 기다려보자고 의견을 모았다. 3일째 되는 날 오후 마침내 바닷길은 열렸고, 의료팀은 심한 뱃멀미를 감수하며 울릉도에 들어왔다.
다음 날 울릉초등학교 교정에 임시진료소가 차려졌다. 이틀간 예정된 진료 일정을 불가피하게 하루로 변경한 만큼 오전 7시부터 진료가 시작됐다. 신경외과와 호흡기내과, 신장내과, 일반외과, 응급의학과 등 총 5개 과 의료진이 주민을 맞았다. 버스로 1시간 거리인 북면 주민들도 진료소를 찾을 정도로 붐볐다. 오후 6시까지 주민 400여 명이 진료를 받았다.
이날 의료봉사는 울릉도가 고향인 전우진(66) 당진종합병원장이 단행한 것이었다. "의사로서 고향 울릉도에서 봉사해야겠다는 마음을 늘 품고 살았습니다. 병원이 어느 정도 안정되면서 올해 울릉도 의료봉사에 나서게 됐습니다. 연세 드신 분들이 많아 신경외과 진료를 많이 받으셨는데, 모두가 친척이고 가족 같아 더욱 애정을 갖고 진료를 하게 되더군요."
전 원장은 울릉읍 도동 출신이다. 당시 임시진료소가 차려졌던 울릉초등학교는 전 원장의 모교로 최수일 울릉군수와는 초등학교 동기다. 전 원장의 아버지는 잠수기어선 선주였다. 교육열이 강한 부친 덕에 전 원장은 초등학교 졸업 후 대구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녔다. 영남대 법학과를 한 학기 다니다 입시를 다시 치러 고려대 의대에 진학했다. 이곳에서 신경외과 전문의와 박사학위를 받은 뒤 충남 홍성에서 신경외과를 운영하던 전 원장은 1998년 40대 후반의 나이에 유학을 떠났다. 미국 존슨 병원, 펜실베이니아대 척추센터 등에서 연수를 받고 2000년 귀국했다.
전 원장이 5년여의 준비 끝에 2011년 개원한 당진종합병원은 당진시에서 처음으로 문을 연 종합병원이다. 1만6천여㎡ 부지에 지하 1층 지상 8층 300병상 규모에 26명 전문의가 근무하고 있다.
전 원장의 고향 방문은 20년 만이었다. 학창시절엔 울릉도에서 매번 방학을 보냈지만 부모님이 출향한 뒤 왕래가 뜸해졌다. 1997년 병원을 정리하고 유학길에 오르기 전 여행 목적으로 울릉도를 방문한 게 마지막이었다.
"지난 의료봉사 당시 주민들의 환대가 잊혀지지 않습니다. 제가 부끄러울 정도로요. '누구 아들 왔다'며 다들 너무나 좋아하셨죠. 바다 날씨가 좋지 않아 하루만 진료하고 나온 게 굉장히 아쉽더군요. 초등학생 어린 후배들과 '꿈'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타임캡슐까지 준비했었는데 결국 사용하지 못했네요."
전 원장은 3년 안에 울릉도를 반드시 재방문할 계획이다. 그것도 방사선과 의사인 아내, 소화기내과와 치과의사인 둘째아들 부부와 팀을 꾸려서 말이다. 초등학교 후배들과 만나 이야기하는 시간도 빼놓지 않을 예정이다.
이번 의료봉사 이후 전 원장의 머릿속엔 고향 울릉도가 더욱 깊이 자리 잡았다.
지난 7월 25일은 당진종합병원이 문을 연 지 만 6년이 되는 날이었다. 전 원장은 개원 6주년 기념행사를 취소하고, 주민 김성도 씨 부부에게 구입한 독도 T셔츠 260벌을 이날 하루 동안 직원들과 나눠 입고 '독도사랑 캠페인'을 벌였다.
같은 달 18일엔 모교인 울릉초등학교에 학교발전기금 1천만원을 기탁하고, 매년 졸업생에게 200만원씩 10년간 장학금 2천만원을 지급하는 협약도 맺었다. 최근엔 추석 선물로 사용할 울릉도 오징어 100축도 주문했다. 고향 주민들에게 작은 보탬이 되겠다는 전 원장의 뜻이다. "울릉도가 지리적으로 열악한 위치에 있다 보니 의료 환경이 열악할 수밖에 없어 늘 안타깝죠. 그래도 고향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게 참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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