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리·무능력 정치 바로 외면당해
젊은 층은 일회용 정당시대 도래
보수는 오랜 유권자에 기대 생존
중장년층도 변할 날 머지않았다
상 위에는 빈 그릇이 널려 있다. 빈 그릇은 아닐지라도 먹다 남은 음식, 손도 대지 않았지만 식은 음식 그릇도 많다. 상에 올릴 때만 해도 상큼하던 물회는 두 시간도 되지 않아 벌써 변하기 시작한다. 빈 그릇, 먹다 남긴 음식, 식어버린 음식, 심지어 상해버린 음식 그릇이 상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다. 신선한 새 요리, 맛있는 새 요리는 상 위에 올라갈 기회조차 없다.
구세대는 먹을 게 귀한 시절에 자랐다. 모든 음식은 하늘이 내린 귀한 복이라 생각한다. 음식 버리면 천벌받는 줄 안다. 식어도, 남아도, 버리지 않는다. 데워서, 모아서, 다시 상에 올린다. 조금 맛이 변해도 버리지 않고, 어지간하면 한번 끓여 먹을 궁리 한다. 흰 곰팡이 정도는 그 부분만 떼고 먹는다. 검은 곰팡이가 눈에 띄어야 버린다. 음식을 깨끗이 비워야, 자리가 파해야 그릇을 치운다.
신세대는 그렇지 않다. 먹다 남은 건 버린다. 식은 것도 버린다. 맛없으면 손도 대지 않고 바로 쓰레기통에 직행이다. 상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는다. 절대로. 코스 요리에 익숙해서인가, 먹는 중에도 그릇 치운다. 그래서 인구도 줄고 먹는 양도 주는데 음식물 쓰레기는 늘어만 간다. 메뉴부터 다르다. 일회용, 인스턴트형 패스트푸드가 대세다. 구세대도 조금씩 신세대를 닮아 간다. 전보다는 쉽게 치우고 쉽게 버린다. 경제적 여유가 생기고, 위생 관념도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현재의 국회는 2004년, 2008년 정치에 입문한 의원들이 주류다. 청년 유권자는 실적 없이 선수(選數)만 높은 정치인, 매우 싫어한다. 한 번 기회를 줬는데, 기대에 못 미치면 바로 아웃이다. 흠집난 정치인, 쳐다보지도 않는다. 생각이 다르면 아무리 유능해도, 바라보지도 않는다. 정치인도 '일회용'을 찾는 것은 아닌가 싶다. 그동안 기성 정치권 입장에서는 다행스럽게도, '야박한' 청년 유권자는 투표율이 낮았고, '정 많은' 중장년층은 투표율이 높았다. 그래서 기성 정치인들이 버텼다.
오래는 못 간다. 우선 투표율의 변화다. 사전투표의 도입으로 청년 유권자의 투표율도 중장년층 못지않게 높아졌다. 그뿐 아니다. 중장년층도 곧 바뀔 것이다. 그들의 음식 소비 행태가 신세대를 따라간 것처럼, 그들의 정치 소비 행태도 곧 바뀔 것이다. 기성 정치인들은 버틸 시간이 별로 없다.
정치권은 아직 정신 차리지 못하고 있다. 유권자는 바뀌는데, 세상이 달라졌는데, 여전히 식은 음식 데워 내놓을 생각한다. 먹다 남은 대궁밥이라도 내놓으면 '배고픈' 유권자들이 고마워할 줄 착각한다. 상한 음식 한 번 끓여 내놓으면 속을 줄 안다. 천만의 말씀이다. 유권자가 배고픈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리 배고파도 가릴 거 가리는 까다로운 식도락가다. 그들은 맛있고 신선하고, 무엇보다도 자신들을 위해 마련된 음식을 원한다.
자유한국당은 2016년 총선, 2017년 대선에서 충격적인 패배를 당하고도 아직 정신 못 차렸다. 정신 못 차리기는 보수 정당만이 아니다. 중도를 자처하며 줄타기하려는 국민의당, 바른정당도 큰 차이 없다. 스스로 이미 상해버린 음식인 줄, 식어버린 음식인 줄, 남들이 먹다 남긴 대궁밥으로 전락한 줄 왜 깨닫지 못하는가?
필자가 두 달 전 본란에 기고한 '국민의 당 전성시대인가' 칼럼을 다시 꺼내 읽어보라. 현안마다 캐스팅보트를 쥐고 정국을 좌지우지하던 국민의당이 이제 여론 지지율 3%로 분당 위기를 맞았다. 유권자들이 정치 서비스를 얼마나 빨리 쓰고 버리는지, 정치인뿐만 아니라 정당조차 일회용이라는 사실이 실감날 것이다.
내년 지방선거가 이제 반년여 앞으로 다가왔다. 큰 실착을 범하지 않는 한, 돌발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 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전국적 압승이 예상된다. 지금 같으면 대구경북조차 자유한국당에게는 만만찮은 도전이 될 것이다. 빈 그릇 치워라. 대궁밥 너희나 먹어라. 식은 밥 돼지에게 줘 버려라. 상한 밥 버려라. 따스한 새 햅쌀밥 맛있게 지어 상에 올려라. 정치권에 대한 유권자의 준엄한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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