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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칼럼] 왜 지방분권개헌인가

정창룡 논설실장
정창룡 논설실장

대한민국 헌법 제1조 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다. 하지만 사실은 '서울공화국'이라는 표현이 더 익숙하다. 그만큼 '중앙' 집권과 '수도권' 집중이라면 우리나라를 따를 나라가 세계 어디에도 없다.

이를 일찌감치 간파한 이가 주한 미국 외교관을 지낸 그레고리 헨더슨이었다. 그는 1968년 한국사 연구의 기념비적인 저작으로 꼽히는 책 '소용돌이의 한국정치'(한국어 초판 2000년)를 냈다. 이 책에서 그는 우리나라 정치 체제를 두고 "중앙집권체제가 수도권 집중을 초래하며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소용돌이 정치 체제"라고 갈파한 바 있다. 반세기가 흘렀지만 그의 통찰은 여전히 유효하다.

매출 기준 우리나라 100대 기업 중 86개 기업의 본사가 수도권(서울 70개)에 있다. 예금의 70%를 가진 곳도 수도권이다. 2015년 기준 연구개발 투자(R&D)의 67%, 문화시설 역시 67%가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전국 20대 대학의 80%가 몰린 곳도 수도권이다. 49.5%의 인구가 49.4%의 지역내총생산(GRDP)을 차지한다. '서울공화국'이란 말에 어찌 토를 달 것인가.

폐해가 적지 않다. 중앙 집권과 수도권 집중 완화 요구가 쏟아진다. 그래도 완화될 조짐은 없다. 2000년대 이후 수도권의 GRDP 성장률은 비수도권의 성장률을 지속적으로 웃돌고 있다. 2014년 이후엔 성장률 격차가 1% 이상으로 더 벌어졌다. 고학력의 젊은 인력과 고급산업기술 인력이 수도권으로 이동한다. 2010~2016년 고급산업기술 인력 순증가의 59.1%가 수도권에 몰려 있다.

수도권 편중은 국가 균형 발전과는 상극이다. 2009년 EU 지역위원회는 지방분권지수와 국민소득 간에 정비례 관계가 있다는 보고서를 냈다. 지방분권이 잘된 국가일수록 국민소득이 높고 덜 된 국가일수록 낮다는 내용이다. 우리나라가 2006년 국민소득 2만달러에 들어선 지 10년이 넘도록 소득 3만달러를 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 있다.

문재인 정부는 누구보다 지방분권에 적극적이다. 내년 지방선거에 맞춰 지방분권개헌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늘 강조한다. 하지만 우리는 노무현 정부 때의 아픈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노 정부는 2005년 지방분권을 한답시고 빈곤층, 노인, 장애인 등에 대한 순수 복지사업 67개를 지방에 이양했다. 재원을 마련한답시고 '분권 교부세'를 만들었다. 하지만 그 후 5년간 분권교부세 수입은 연평균 8.7%가 증가한 반면 복지비 지출은 연평균 18%씩 증가했다. 지방분권이란 허울 아래 지방재정난은 가중된 것이다. 전북대 강준만 교수는 이를 두고 '지방분권 사기극'이라고까지 힐난한 바 있다.

이런 사기극이 되풀이되지 않으려면 지방재정권을 비롯한 지방분권이 개헌에 명기돼야 한다. 지방자치의 원조 유럽지방자치제도 헌장은 형식이 아닌 실질적 지방자치제도 보장을 위해 4가지 필수 조건을 제시하고 있다. 이 4가지 중 우리가 눈여겨 봐야 할 대목은 지방자치정부의 기본적 권한과 책임 범위를 반드시 헌법 또는 법률로 정해야 한다는 것(제4조 1항)과 지방자치정부가 자율적으로 책임과 권한을 수행할 수 있는 재정적 자원(제9조), 자율적 인적 자원의 확보(제6조) 등 자치권 행사에 필수적인 수단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는 자치조직권, 자치재정권에 대한 규정이다.

우리나라 현행 헌법은 제117조와 제118조에서 지방자치를 규정하고 있긴 하나 지방정부를 자치의 주역으로 인정하기보다는 중앙정부의 하급기관으로 전락시켰다.

지방자치는 지방마다 다른 특성을 반영하고 이를 통해 다른 지역과 차별화된 정책을 펴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다른 지방에 비해 비교우위에 있는 역할을 찾고 그 역할을 확대 발전시켜 나가는 것은 의미 있는 작업이다. 지방 고유의 독창성이 다양성으로 이어지고 다양성이 국가 전체적으로도 조화를 이뤄야 국가 경쟁력이 커질 수 있다.

지방분권개헌이 필요한 때다. 우리는 지금 그런 골든타임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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