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은 자존심이다."
회사원들이 가끔씩 입에 올리는 말이지만, 프로야구만큼 돈과 자존심의 연관 관계가 철저한 곳도 드물다. FA 계약을 앞둔 유명 선수들은 곧잘 "자존심만 살려준다면…"이라고 한다. 자존심의 충족 여부는 오로지 돈 액수일 뿐이다. 구단에서 어릴 때부터 키워줬다거나, 동료와 야구 스승이 있다거나, 구단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거나 하는 따위는 고려 사항이 아니다.
돈을 조금만 더 준다고 하면 오래 몸담은 구단이라도 미련 없이 짐을 싸는 것이 요즘 세태다. '돈에 팔린 선수'라는 비판을 받더라도 "짧은 선수 생활 동안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한다"며 실리에 집착하는 선수가 대부분이다. 야구판은 '낭만'의 세계가 아니라 냉정한 '비즈니스'의 세계다. 구단은 선수가 부진하면 연봉 삭감과 방출을 하고, 선수들은 기회 있을 때 한몫 단단히 챙기고 보자는 식의 논리뿐이다.
그러한 냉혹함이 전부인가 했더니, 일본에서 신선하면서도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온다. 투타를 겸업하는 '이도류'(二刀流)의 천재 오타니 쇼헤이(23·니혼햄 파이터스)의 메이저리그 진출기는 한 편의 뛰어난 다큐멘터리와 다름없다. 얼마 전 그는 메이저리그 30개 전 구단에 질문지를 보내면서 '서류 전형'을 시작했다. 자신을 영입하려는 이유와 구단 시설, 철학 등 6개를 묻고는 영어와 일본어로 답변할 것을 요구했다. '서류 전형'을 통해 뉴욕 양키스, 보스턴 레드삭스 등 '빅 마켓'은 탈락시키고, 시애틀 매리너스,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등 서부 지역 7개 구단만 통과시켰다. 오타니는 현재 LA에서 7개 구단 관계자와 차례로 대면하면서 팀을 고르기 위한 '면담 전형'을 진행 중이다. 구단과 선수 간 갑을(甲乙) 관계가 뒤바뀐 전대미문의 사건이다.
오타니가 콧대 높은 유망주이기 때문에 이런 상황을 연출한 것이 아니다. 돈보다는 자신에게 맞는 팀을 선택하려는 의지의 표현이다. 메이저리그의 노사협정으로 인해 25세 미만인 오타니는 계약금과 연봉을 합해 최대 575만달러만 받는다. 일본에서는 2년만 기다리면 5천만달러를 받을 수 있는데, 지금 갈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이 쏟아진다. 오타니가 돈에 집착하지 않았기에 승자의 입장에서 메이저리그 도전기를 쓰고 있는 중이다. 박찬호, 추신수 등 '먹튀' 논란을 빚은 한국 선수와는 달리, 당당하게 자신을 표현하는 오타니가 훌륭해 보인다. 돈만이 자존심의 척도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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