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끝내 대구로 내려온다고 한다. 홍 대표는 최근 대구 북구을 당원협의회 위원장 공모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혔다. 애초 조원진 국회의원이 탈당하고 무주공산이 된 대구 달서병이 유력한 후보지로 거론됐지만 좀 더 편한(?) 이웃 동네로 방향을 틀었다.
홍 대표의 대구행을 두고 찬반양론이 엇갈린다. 한국당 북구을 당원들 간에도 견해차가 적지 않다고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홍 대표의 대구행은 명분도, 실리도 없는 행보다. 오히려 한국당 지지자들에게 대단히 잘못된 신호를 줄 공산이 크다. 지방선거를 앞둔 현재 한국당은 사면초가에 처해 있다.
최대 격전지인 수도권에서 의미 있는 지지를 얻지 못하면 2년 후 치러질 국회의원 선거도 장담하지 못한다. 홍 대표는 지방선거에서 대구와 경북, 부산, 인천, 울산, 경남 등 6곳의 광역단체장 선거 승리를 배수의 진으로 쳤다. 6곳의 승리를 위해서라도 최전선인 수도권에서 격렬한 싸움을 피해선 안 된다. 그의 대구행은 전쟁터를 버리고 안전한 후방으로 몸을 피하려는 '꼼수'로 비친다. 한국당 지지자들에게 홍 대표의 대구행은 '수도권 포기'로 비쳐진다.
최대 승부처인 수도권을 포기하면 결국 지방에서도 이길 수 없다. 대구경북 지지자들도 고민에 빠질 것이다. 전쟁터를 버리고 온 장수를 지켜야 할 지, 버려야 할 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기자는 등을 돌릴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본다.
대구 한국당 지지자들은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의 대구행에 냉정할 만큼 차갑게 대했다. 큰 정치인을 많이 겪어본 대구의 한국당 지지자들은 웬만한 정치인에게 휘둘릴 만큼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은 이미 보여줬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0년 총선에서 서울 종로를 버리고 부산행을 택해 장렬히 패한 후 '바보 노무현'으로 전국적인 스타가 됐고 대권까지 거머쥐었다. 정치적 계산이 아닌 자기희생을 통해 권력의 최정점에 오르는 승부사적 기질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홍 대표는 서울 동대문에서 네 번의 국회의원을 거쳤고, 경남도지사도 지냈다. 지난 대선에서 보수 야당의 대통령 후보까지 올랐다. 대통령을 제외하고는 더 할 게 없다. 이런 인물이 향후 정치적 일정에 따라 명분도 없이 슬그머니 보수의 안방을 차지하겠다는 것을 이해하는 당 지지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굳이 국회의원 배지가 필요하다면 도백을 지낸 경남도로 가는 게 순리다.
홍 대표가 진정 대구를 보수의 심장으로 여긴다면 TK의 좌장이 아닌 10년 앞을 내다보고 TK에서 인물을 찾고 키우는 데 심혈을 쏟아야 한다. 텃밭에서 모종을 키워 거친 들판에 옮겨심듯이 TK에서 보수 가치에 맞는 인물을 발굴하고 새 인물을 영입해 좌파 세력과 싸우는 전사를 만드는 게 대표의 역할이다.
이런 측면에서 홍 대표와 함께 달서병 당원협의회 위원장 공모에 응할 것으로 알려진 강효상 국회의원의 대구행도 명분이 없다. 대구 출신이지만 서울에서 활동한 것을 기반으로 비례대표가 됐으면 다음 총선에서 서울에서 여당 후보와 진검 승부를 펼치는 게 정치적 도의다.
한국당 내부 사정도 딱하다. 당 대표가 험지를 버리고 대구행을 선택하는 데 대해 쓴소리 한마디 나오지 않는다. 대구 국회의원이 공개적으로 입장을 밝혔다는 얘기도 들어보지 못했다. 다음 총선에서 손해를 볼까 봐 눈치 보는 것으로 이해된다.
일부 의원들은 말은 못하고 속앓이만 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견제와 비판 기능이 사라진 당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착잡하다. 박근혜 대통령 시절 제 목소리 한 번 내지 못한 대구 정치권이 또 다른 시어머니를 모시면서 눈치를 봐야 하는 처지가 안쓰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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