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옛날 신문 속 여성] 우량아

광고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시대에 따라 변한다. 1960년대 우리나라에 조제분유가 등장하고 난 후 1970년대 분유 광고에 등장하는 아기는 특히 오동통하다. '분유를 먹어야 건강하다'는 메시지를 은연중에 내포함과 동시에 당시 건강에 대한 보편적인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다.

먹고살기 힘들었던 시절, 통통함을 내세운 우량 아동에게 상을 주었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아동 비만은 각종 질병의 원인이라고 밝혀졌기 때문이다.

우량 아동 선발대회는 일제강점기 때부터 시작되었고 그 후 기업에서 이어받아 계속되다가 1990년 이전에 사라졌다. 당시 우량아 선발대회의 인기는 실로 대단했다고 한다. 방송사가 중계할 만큼 국민 관심이 높았으며 선발된 아이는 청와대에 초청되기도 했다.

옛날 신문에는 우량 아동상에 관한 흥미로운 기사들이 나온다. 어떻게 하면 우량 아동상을 받을 정도로 튼튼해질 수 있었을까? 1940년 5월 6일 동아일보를 보면 표창식장 한구석에서 진행된 두 어머니의 이야기가 기사에 담겨 있다.

"보건회가 없었더라면 우리 애는 큰일 날 뻔했어요." "그래요? 우리 애두 몹시 약하더니 여기 다니구 나서 튼튼해졌어요." "그러면 어떻게 하기에 여기를 다니기만 하셨는데 애기가 튼튼해졌습니까?" 하고 기자가 물으니 "아이구 다니기만 한다구 되나요, 다니기두 잘하지만 어머니 정성이 얼마나 드는데요." 즉, 아무리 약한 아기라도 어머니가 정성을 들이고 꾸준하게 보건회의 지도를 잘 받으면 튼튼해진다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보건회'는 상을 수여한 경성아동보건회를 지칭한다. 경성아동보건회에서 연중행사로 우량 아동을 표창했다. 1940년 4월 27일 신문에 보면 경성아동보건회에 대해 보도된다. "경성아동보건회는 16년 전인 대정 13년 1월에 노선복(Rogenberger'로젠버거) 여사가 조선에 와서 어린이 보건 사업의 급선무를 통감하고 간호부 한 사람과 더불어 개인 가정을 방문하고 육아와 위생에 대한 지도와 선전을 행함으로써 첫 발걸음을 내디딘 것"이라는 설명이 있다.

서양의학은 '성장의 표준'을 제시했고, 사회는 아이를 표준에 맞게 키우려면 젖을 먹이는 것보다 분유나 우유를 먹여야 한다고 권장했다. 조제분유는 1960년대 중반 우리나라에서 제조하기 시작했는데, 분유업계의 이러한 광고로 당시 아이들은 유행처럼 모유 대신 분유를 먹고 자랐다. 불과 30, 40년 만에 건강에 대한 기준이 바뀌고 시대가 급격하게 바뀌었다. 앞으로 30년 후에는 사회가 얼마나 바뀔까. 지금 내가

'기준'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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