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뭐야! 지금 무슨 짓들을 하고 있나! 당장 집어치워!'
1963년 가을, 대구 동화사 일주문 안쪽 마애석불 앞 산자락에서 열린 '동화사진입도로확포장 준공 및 기념비 제막식'에 울려 퍼진 강원채(姜琬埰) 당시 대구시장의 격노한 목소리다. 육군 현역 대령으로 시장직을 수행하던 그는 차고 있던 권총까지 빼들고 비석을 겨눴다. 마치 방아쇠를 당길 기세였다. 주변의 만류로 겨우 화를 삭인 강 시장은 비석을 당장 땅에 묻을 것을 지시, 이를 확인하고서야 행사장을 박차고 나왔다. 소위 '강 시장 비석 제막식 권총 사건'이다.
김종협 전 대구시팔공산공원관리사무소장이 본사에 제보하고 최근 대구행정동우회보에 쓴 글에 따르면 사연은 이랬다. 1961년 5'16 이후 같은 달 25일 대구시장으로 부임한 강 대령은 1963년 12월 11일까지 대구에 머물렀다. 부임 뒤 팔공산 자락 백안삼거리에서 동화사까지는 비와 산사태로 길이 끊겨 통행 불편과 부역으로 주민들이 매년 시달린다는 민원에 군 병력으로 왕복 2차로 도로를 내고 포장까지 마쳤고, 사찰'상가'주민들은 감사 표시에 나섰다.
사단은 시장에게는 도로준공 기념행사라 하고 실제는 '강원채시장동화사진입도로확포장공덕비'의 제막을 준비하면서 터졌다. 제막과 함께 드러난 문구를 보고 강 시장은 깜짝 놀랐다. 하지만 41세의 젊은 시장에게 공덕비는 되레 화만 돋웠다. 그러잖아도 옛 비리를 근절하겠다며 앞세운 5'16정부가 아니었던가. 자칫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 뒷감당은 어찌할 수 없었을 터였으니 불같이 화를 내고 파묻을 만도 했을 것이다. 이후 비석은 자연히 잊혔다.
그런데 지금 비석을 파내 교훈으로 삼자는 일이 거론 중이다. 이 나라 지도자와 고위 관료의 온갖 비리가 연일 터지는 즈음에 타산지석이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전 국정원장 자녀가 10억원 넘는 집값을 돈 세는 기계까지 동원해 현금으로 줬다는 기담(奇談) 같은 일들이 넘실대는 터라 그럴 만도 하다. 특히 정부는 지난해 7월 국정운영 5개년 계획 100대 국정과제에서 적폐 청산과 반부패 개혁을 1, 2순위로 꼽았으니 더욱 그렇다.
옛 비석을 파서 드러냄은 그의 공적 기리기보다 아름다운 행적을 되새겨 공직세계의 거울이 되게 하고자 함이니 나름 뜻있다. 누군가의 앞장을 기대하는 까닭이다. 이는 요즘 대구 공공기관 전화기에서 흘러나오는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 위도 아래도 대구는 청렴의 물이 흐릅니다'는 안내 음성과도 어울릴 만해서다.
댓글 많은 뉴스
나경원 "李 장남 결혼, 비공개라며 계좌는 왜?…위선·기만"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
李대통령, 대북전단 살포 예방·사후처벌 대책 지시
대통령실 "국민추천제, 7만4천건 접수"…장·차관 추천 오늘 마감
또래女 성매매 시키고, 가혹행위한 10대들…피해자는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