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유럽의 귀족 가문은 집사를 뒀다. 집사의 덕목은 절대적인 과묵함이었다. 그래서 "일 못하는 집사는 용서해도 입 가벼운 집사는 용서할 수 없다"는 말까지 생겼다. 그런데 1900년대 들어 귀족들의 치부가 기사화되는 일들이 잇따랐다. 집사라는 직업이 사양길에 접어들면서, 해고된 집사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비밀들을 신문사에 팔아넘겼다. 주인으로부터 갑질을 많이 당한 집사들이 앙갚음 차원에서 비밀을 누설하는 경우도 있었다.
현대에도 집사들은 있다. 운전기사, 수행비서, 보좌관 등이다. 이들은 고용주의 일거수일투족을 훤히 꿰고 있다. 최근 대구의 모 유력 기관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2 위치에 있던 임원이 №1 임원의 부인이 타는 관용차의 운전기사로 자신의 인척을 투입했다. №1의 비리나 약점을 잡을 목적으로 자기 사람을 몰래 심었다고 의심할 만한 정황이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1이 노발대발했고 갈등 끝에 결국 №2가 밀려나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사실, 측근이 배신하면 고용주로서는 뒷감당 안 될 일이 생긴다. 그래서 머리 좀 돌아가는 고용주들은 평소에 측근들을 각별히 관리한다. 월급 이외 가욋돈을 수시로 주고, 퇴직한 측근에게는 이권까지 챙겨주기도 한다. 가장 효과적인 측근 관리는 가족처럼 대해주는 것이다. 인간적 대우를 받은 집사는 거의 배신하지 않는다. 반면, 밤낮없이 부리면서도 보상은커녕 갑질을 일삼으며 측근들을 막 대하는 고용주도 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살았다면 문제 될 게 없지만, 대개 그렇지 않기에 뒤탈은 '필수 코스'다.
목하 대한민국의 전직 대통령 두 명이 집사 격인 측근들의 폭로 때문에 궁색한 처지에 빠졌다. 한 명은 영어의 몸이 돼 있고 한 명은 검찰 수사 칼날이 옥죄어 들어가고 있다. 본래 아군의 총질이 더 아픈 법이다. 두 전직 대통령으로서는 배신감을 느낄 수도 있겠다. 권력이 시퍼렇게 살아있을 때는 콩고물에 취해 있다가 세상 바뀌니 변절했다고 개탄할 수 있다.
하지만 배신감은 서로 믿고 있던 사이에서 일어나는 감정적 기제다. 그래서 상대적이다. 보도를 종합해보면 정치인과 측근으로서 그들의 관계는 깊은 신뢰와 충성심이 아니라 이해와 타산으로 엮여 있었던 듯하다. 두 전직 대통령이 평소 측근들에게 인간적으로 딱히 잘 대해준 것 같지도 않다. 그들이 서로 간에 배신감을 운운하는 것은 어찌 보면 감정적 사치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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