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르포] 대구의료원 주취자 응급의료센터

욕하고 난동…밤마다 만취자와 전쟁

지난 21일 오후 10시쯤 대구의료원 주취자 응급의료센터. 40대 만취자를 긴급 이송해 온 서부소방서 119대원과 경찰이 돌발 행동을 감시하는 가운데 간호사가 응급처치를 하고 있다. 정운철 기자 woon@msnet.co.kr
지난 21일 오후 10시쯤 대구의료원 주취자 응급의료센터. 40대 만취자를 긴급 이송해 온 서부소방서 119대원과 경찰이 돌발 행동을 감시하는 가운데 간호사가 응급처치를 하고 있다. 정운철 기자 woon@msnet.co.kr

"정신 차려봐요. 환자분 이름이 뭐예요?"

의사의 물음에 박모(44) 씨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만 웅얼거렸다. 박 씨는 온몸에 술 냄새를 풍기며 119구급차에 실려 왔다. 택시기사가 박 씨를 도로변에 버려둔 탓에 이마에는 피까지 흐르고 있었다. 지난 21일 오후 10시 대구 서구 대구의료원 주취자 응급의료센터는 만취한 환자들과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몸을 가누지 못하던 박 씨가 휘두르는 팔에 간호사 고은주(26) 씨가 들고 있던 의약품 상자를 떨어뜨렸다. 당직을 서던 하종성(56) 응급의학과장이 소방관들의 도움을 받아 피를 닦고 거즈를 덧댔다. 10여 분간 응급처치를 마친 하 과장의 이마에 땀이 흥건했다. 진단서를 작성하는 그의 시선은 컴퓨터 모니터와 욕설을 퍼붓는 박 씨 사이를 오갔다. 하 과장이 "주취환자는 언제 돌발 행동을 할지 몰라 계속 주시해야 한다"고 말하는 순간, 박 씨가 심하게 몸을 뒤척였다.

지난 2014년 문을 연 대구의료원 주취자 응급의료센터는 지역에서 유일한 주취자 의료 서비스 전담센터다. 경찰관과 의료진이 함께 근무하며 알코올 중독이 의심되는 상습 주취자나 행려병자, 노숙인 등이 대상이다.

단순음주자나 통제가 되지 않을 정도로 주취 난동을 부린 경우는 제외된다. 비수도권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생긴 이곳은 개소 이후 시민 3천541명에게 의료 서비스를 제공했다. 각종 위험에 노출된 주취자를 건강하게 돌려보내는 공공 의료 시스템이자 사회적 안전망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다음 날 오전 3시쯤 박 씨가 정신을 차렸다. 박 씨 곁에는 소식을 듣고 부리나케 달려온 70대 노모가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박 씨는 노모의 부축을 받으며 응급실을 나섰다. 간호사 곽선영(23) 씨는 "어머님이 연신 아들을 보호해줘서 고맙다고 인사했다"며 "오늘도 무사히 한 명이 집으로 돌아갔다"고 뿌듯해했다.

이곳 의료진은 보람이 큰 만큼 고충도 남다르다고 했다. 술에 취한 사람은 의료진과 대화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다. 하 과장은 "환자들은 대부분 본인 이름도 말하지 못하는 상태로 실려온다"면서 "환자의 병력을 알아보려 이름이나 생년월일을 물어봐도 엉뚱한 얘기만 하니 효율적인 치료가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그 때문에 의료진은 수시로 감염 위험에 노출된다. 수개월 전 이곳을 찾은 한 남성은 만취한 상태로 넘어져 얼굴에 피가 흐르고 있었다. 응급처치를 한 의료진은 다음 날 이 남성이 후천성 면역 결핍증후군(AIDS) 환자라는 소식을 들었다. 다행히 감염된 사람은 없었지만 의료진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폭력에 시달리는 경우도 적잖다. 3년째 이곳에서 근무 중인 석정환(35) 경장은 다친 동료 경찰관을 떠올렸다. 6개월 전, 건장한 체격의 20대 남성이 실려 왔다. 경찰이 의료진과 실랑이를 벌이던 남성을 병상으로 옮기려는 순간, 별안간 주먹이 얼굴로 날아왔다. 그대로 넘어져 머리를 부딪친 경찰은 뇌출혈로 전치 20주의 중상을 입었다. 석 씨는 "동료 경찰관은 아직도 사고 순간을 기억하지 못할 만큼 충격이 크다"고 한숨을 쉬었다.

이곳이 가장 바쁜 시기는 매달 20~25일이다. 20일은 저소득층 주민이 기초생활수급비를 받는 날이다. 이맘때가 되면 주취환자 수도 2배로 늘어난다. 간호사 강혜진(29) 씨는 "자기 통제력을 잃은 주취자들이 옷을 입은 채로 대소변을 보거나 세면대에 볼일을 보는 경우도 있다"면서 "1주일을 버티지 못하고 그만둔 간호사도 있을 정도"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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