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각과 전망] 여의도의 대구식당, 호남식당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맞은편 순복음교회 쪽에 '진미파라곤'이라는 대형 오피스텔이 있다. 그 빌딩 지하 1층에 자리 잡은 남도음식 전문점 '대방골' 식당. 점포 면적만 300㎡에 이를 정도의 대형 음식점이다. 전라도 대표 음식인 보리굴비 정식이 주메뉴인데 밤낮을 가리지 않고 손님들이 몰린다. 이 집이 번창하게 된 데는 호남 국회의원과 관료들의 뒷받침이 컸다. 남도음식 자체가 흡인력을 갖는데다가 힘이 있는 정치인, 공직자들이 모여드니 장사가 되지 않을 리 만무하다. 호남 출향민들과 기업인들도 자연스럽게 이 집을 찾으면서 예약이 필수인 식당으로 자리매김했다.

이 집 바로 맞은편에 지난해 4월 대구 음식 전문점이 생겼다. 대구 특미인 뭉티기와 육회, 대창 및 양지머리 구이를 판다. 식사 메뉴로 육회비빔밥과 소고기국밥이 일품이다. 고기는 경북 고령공판장에서 도축한 소를 매일 공수해 쓰며 음식 재료도 국산만 고집하는 집이다.

대구 범어동 한 방송국 부근에서 아주 잘되는 생고기집을 하는 식당 주인이 생고기를 서울에서도 맛보고 싶다는 몇몇 손님들 성화에 힘입어 불쑥 개업을 했다. 상호는 '대구생고기 전문점 소나무'. 당시는 대선이 코앞에 닥쳤고, 정권이 더불어민주당으로 넘어가는 게 기정사실화돼 있던 상황이었다. '박근혜'와 '보수도시 대구'가 싸잡아 매도당하던 시기였다. 이를 걱정한 지인들이 '대구' 이름만은 빼자는 제안을 했지만 주인의 의지는 확고했다. 대구생고기를 서울에 확산시키기 위해 왔는데 '대구'를 왜 없애느냐는 것. 대구생고기를 브랜드화시켜서 서울서도 팔릴 수 있다는 확신을 대구에 심어주겠다며 오히려 주변 사람들을 설득했다. 나아가 생고기와 육회에 어울리는 소주도 금복주의 '참소주'만 고집했다. 대구생고기집이니 참소주를 팔아야 한다는 논리였다.

그런 식당이 이제 서울에서 철수할 준비를 하고 있다. 장사가 안돼서다. 서울 사람들에게 생고기가 여전히 생소한 음식이란 점이 약점. 하지만 생고기를 좋아하는 대구 사람들조차도 잘 찾지 않는다는 점이 치명적이었다. 음식점은 맛과 서비스로 승부를 해야 한다. 이 집은 이 두 분야만큼은 확실히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데도 위의 대방골 식당처럼 변신하지 못한 것은 지역출신 인사들의 사랑을 받지 못한 탓이 크다. 대구경북이 지역구인 국회의원들도 이 식당보다는 대방골을 자주 찾는다. "대구가 잘되려면 대구음식점을 살려야 한다"는 극렬 애향인들의 권유에 못 이겨 한두 번 왔던 국회의원과 보좌진들 중 꾸준히 찾는 사람은 조원진 국회의원과 몇몇 보좌관에 불과하다. 이 집을 자주 찾는 사람들은 "지역 출신 국회의원이나 관료들이 그 많은 식사 모임 중 한 달에 한두 번 정도만 찾아와도 대구음식점 입소문이 쫙 퍼질 텐데…"라며 안타까워한다.

서울을 주무대로 하는 대구 출신 공무원들도 "대구 식당을 대구 연고 인사들이 살려야 한다"는 주장에는 귀 기울이지 않았다. 대국회 업무특성상 여의도 주변에서 숱하게 손님을 모셔도 "대구시 지정 특미가 여의도에 있다"는 것을 홍보하는 것에는 인색했다. 그게 대구사랑과 무슨 상관이냐는 것이다. 정치인'관료뿐만 아니다. 서울에서 참소주와 경주법주 쌀막걸리를 가장 많이 팔아주는 집인데도 금복주는 본사 차원에서 그 흔한 점포장 회의 한 번 한 적이 없다. 대구에서 팔리는 참소주와 서울에서 팔리는 참소주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식당이 우리 제품 팔아주는 것'과 '우리가 그 집 이용하는 것은 별개'로 생각한다.

그러는 사이 호남 사람들이 키운 대방골은 날로 번성하고 대구 사람들의 외면을 받은 대구음식점은 결국 문을 닫을 운명에 처했다. 몇 년 전 여의도에 의욕적으로 진출했던 '동인동 찜갈비'도 그렇게 해서 1년도 안 돼 문을 닫았다고 한다. 이런 것들이 모여서 '대구 음식은 맛이 없다', '대구 사람은 뭉칠 줄 모른다'는 인식으로 연결될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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