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 노동조건, 문화시설 등 청년들이 대구를 떠나는 이유는 다양하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 사는 전국의 20, 30대 청년은 747만3천916명. 우리나라 전체 청년 중 절반이 넘는다. 청년들의 좌절과, 고민, 희망, 꿈 등 다양한 이슈를 수도권 청년들이 선점하는 이유다. 그러나 지역에도 청년이 있고, 그들의 삶이 있다. '인 서울'의 파도 속에서 지역을 지키며 살아가는 대구 청년들의 삶과 고민을 들어봤다.
◆대구에서 꿈 이룰 토양 만들다
김다희(가명'25) 씨는 오로지 '대구에서 일하고자' 공무원의 길을 선택했다. 만족스러운 일자리를 찾기 어려운 지역 현실에서 공무원은 그가 고를 수 있는 가장 좋은 선택지였다. 김 씨는 "어려울 때 힘을 줄 수 있는 사람들도 다 대구에 있고, 붐비는 서울보다는 각박하지 않은 고향에서 살고 싶었다"며 "대구에 살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서울이나 타 지역으로 간 친구들도 많다"고 아쉬워했다.
128만671명. 대구경북에 거주하는 20, 30대 청년들이다. 128만 명의 지역 청년들은 "원하는 곳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싶다"는 꿈을 꾼다. 대구에는 '원하는 곳'과 '하고 싶은 일' 모두 포기하지 않은 청년들이 많다. 어렵더라도 원하는 일을 하면서 고향에 살고 싶어 하는 이들이다. 대구 남구 대명동 연극문화거리를 거점으로 활동하는 극단 '백치들'의 안민열(33) 대표는 "20대 때에는 진지하게 서울행(行)을 고민했다"고 말했다. 지역의 연극 문화 환경 속에서는 재능을 다 펼치지 못하리라는 게 이유였다. 잠시 서울 생활을 하며 많은 연극을 접한 그는 "좋은 작품은 공연하는 지역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배우와 연출가가 확고하게 중심을 잡아야 제작된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그는 그 길로 대구로 돌아와 뜻을 함께하는 동문들과 함께 지난 2012년 극단을 차렸다.
그를 비롯한 청년 연극인들은 대구 연극계의 밀알이 됐다. '대명연극문화거리' 등 다양한 열매도 맺었다. 여전히 현장에서 배우들을 진두지휘하는 안 대표는 "대구 연극의 미래는 밝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역이다 보니 평론가 그룹의 활동이 적고, 분업화가 잘 이뤄지지 않는다는 한계는 분명히 있지만 대구 관객들은 서울 못지않게 문화 향유에 적극적"이라며 "기량이 뛰어난 젊은 연극인들이 끊임없이 기성 연극인들과 소통하며 발전하고, 새로움을 찾아나간다면 대구 연극은 새로운 전기를 맞이할 것"이라고 했다.
◆대구로 청년 끌어들일 '닻'이 필요해
마스다 히로야 전 일본 총무장관은 저서 '지방소멸'에서 '극점(極點)사회'를 경고했다. 지방과 대도시 간 소득 및 고용 여건 격차로 젊은 층의 대도시 이동이 지속되면 지역이 소멸하고 일부 도시권, 특히 수도권만 살아남는 극점사회가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특정 지역으로 인구와 경제력이 집중되는 극점사회는 재난뿐 아니라 경제 변동에도 취약해 장기적으로 국가의 지속가능성을 해친다고 지적했다.
극점사회를 예방하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실현하려면 '닻'(Anchor) 역할을 할 청년층이 필요하다.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젊은 남녀가 도시에 머무르려면 이들이 살기 좋은 환경을 구축해야 한다. 이러한 환경은 정부 및 지자체의 지원과 일자리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지역에 남아 지역 주민의 관점에서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들어가는 이들이 필요하다.
대구에도 그런 닻들이 있다. '전방위독립문화예술단체'를 표방하는 '인디공오삼' 이창원(38) 대표는 지난 2001년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이라는 음악 영화를 보러 열차를 타고 어렵사리 서울로 갔다. 전국에서 단 한 곳, 서울 광화문의 한 극장에서만 이 영화가 상영됐기 때문이었다. 지친 몸을 이끌고 대구로 내려오는 길, 그는 "영화 하나 보겠다고 이런 고생을 해야 하나? 문화를 소비하고 생산하는 데 지역적인 제약이 있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독립문화예술을 의미하는 인디펜던트(Independent)와 대구 지역번호 053을 합친 인디공오삼은 그렇게 탄생했다.
비주류 청년예술인에게 보수 도시 대구는 척박했다. 자유롭고 새로운 시도를 거듭하는 독립 예술인들이 설 자리는 턱없이 좁았다. 이 대표는 '정보연결의 부재'를 원인으로 지목했다. 예술인들은 대구 청년들이 어떤 콘텐츠를 원하는지 잘 모르고, 대구 청년들은 어디로 가야 독립문화예술을 접할 수 있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홍대'라는 청년 문화의 창구가 있는 서울과 다르다. 이 대표는 '공공문화프로젝트'에 집중했다. 독립 뮤지션들의 음반을 만들고, 공연을 기획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공공영역에서 독립문화예술을 시민들에 보여주려 시도했다. 젊은이들에게 선풍적 인기를 끌며 대구의 '핫 플레이스'로 떠오른 방천시장 김광석 다시그리기 길 등이 그를 비롯한 대구 청년 작가들의 작품이다. 김광석길 벽화 곳곳에는 대구 청년작가들의 숨결이 녹아 있다. 이 대표와 청년작가들이 척박한 대구에 뿌린 첫 씨앗이다. 이 대표는 "김광석길을 비롯한 공공예술을 접한 청년들이 이를 계기로 서울과 다른 대구만의 예술, 우리의 새로운 시도와 도전을 아끼고 사랑해줬으면 좋겠다"며 "대구를 청년예술가들이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독립문화예술 생산기지'로 거듭나게 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내 작품 보여줄 독립영화관, 대구에 있다…대구 청년 영화인들의 희망 '오오극장'
대구 중구 수동에는 객석 55개 규모의 작은 극장이 있다. 전체 상영 영화 중 독립영화를 70% 이상 상영하는 '독립영화전용관', 오오극장이다. 독립영화전용관은 전국에 단 3곳에 불과하고, 오오극장을 제외한 다른 두 곳은 모두 서울에 있다. 지난 2015년 문을 연 이곳에서는 주로 저예산 독립영화와 지역 영화인들의 작품을 상영한다.
오오극장은 협동조합 방식으로 운영된다. 대구에서 활동하는 독립영화 종사자와 영화평론가, 관련 학과 교수, 미디어운동가 등 27명이 조합원으로 가입돼 있다. 대부분 20, 30대 청년 영화인들이다. 조합원들은 "오오극장은 대구 청년 영화인들의 꿈이자 희망"이라고 입을 모았다. 대구에도 영화 작품을 만들려는 청년이 많고, 실제 단편영화를 제작한 이도 있었지만 오오극장이 생기기 전엔 상영할 장소가 없었다는 것이다. 오오극장에서는 대구 감독이 대구에서 만든 장'단편 영화가 자주 상영된다. 올해는 대구에서 제작된 장편영화 두 편을 상영할 계획이다.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경쟁작에 선정된 유지영 감독의 '수성못'과 고현석 감독의 '물속에서 숨 쉬는 법' 등이다. 이곳 서성희 이사장은 "대구에서도 좋아하는 영화를 하면서 생계를 유지해나갈 수 있는 토양을 만들고자 했다. 대구 청년 영화인들도 여건만 갖춰진다면 굳이 서울로 올라가지 않고 대구에서 '대구 영화'를 만들 수 있다고 믿었다"고 강조했다. 개관 3년 차를 맞으면서 영화관 운영도 자리를 잡고 있다. 개관 3년 차였던 지난해에는 1만2천여 명의 관객이 들었다. 조합원 노혜진 씨는 "큰 이익을 내지는 못해도 계속 유지할 수만 있다면 괜찮다. '내 작품이 상영될 수 있는 독립영화관이 대구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지역 청년 영화인들에겐 큰 의미"라고 했다.
조합원들은 대구의 독립영화 저변이 오오극장을 통해 넓어지길 바라고 있다. 미국 뉴욕의 '독립영화 골목'처럼 대구에도 새로운 영화거리가 형성되길 기대한다. 서 이사장은 "주말에는 영화인을 꿈꾸는 청소년'대학생들을 위한 워크숍을 여는 등 독립영화 저변 확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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