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광장] 봄날은 가라

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대중가요가 무엇일까? 계간(季刊) '시인세계'에서 10여 년 전 조사한 바에 따르면 백설희가 부른 '봄날은 간다'였다. 손로원 작사, 박시춘 작곡의 이 노래는 1953년 대구의 유니버설레코드사에서 발매한 음반에 실려 있었다.

'연분홍 치마'로 시작되는 이 노래를 부르거나 들으면 젊은 여자의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살살 휘날리는 것 같다. 이 여자는 왜 옷고름을 씹어 가며 성황당 길에 올랐으며,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었을까? 왜 '앙가슴을 두드리며', '얄궂은 그 노래를 불렀을까? 모두 다 얄궂은 봄날과 '실없는 그 기약' 때문일 것이다. 이 노래는 이미자, 배호, 나훈아, 한영애 등이 리메이크하기도 했다. 그만큼 다른 가수들도 좋아했다는 이야기다.

이 가사를 잘 들어보면 하나의 스토리가 그려진다. 그 스토리란 게 사실은 뻔한 신파다. 사랑하는 젊은 남녀가 있었고, 그들은 마을 뒷산 성황당을 남의 눈을 피해 오르내렸고, 장래를 함께 약속했고, 남자는 떠나갔다.

그리고 그 남자는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오지 않고 다시 새봄이 돌아오자 여자는 봄바람 속에서 앙가슴을 앓는다는 이야기다. 이 노래가 전쟁 중에 나왔으니 그 남자는 전쟁터에 갔을 수도 있다. 뻔한 스토리이긴 한데 한잔 마시고 취기가 올라 이 노래를 불러보면 그 뻔한 서러움이 가슴을 친다.

조선시대의 대중가요 격인 시조창에서도 이 노래의 선조 격이 되는 봄 노래가 제법 있다.

"버들은 실이 되고 꾀꼬리는 북이 되어/ 구십삼춘(九十三春)에 짜내느니 나의 시름/ 누구서 녹음방초(綠陰芳草)를 승화시(勝花時)라 하든고."

작자 미상의 이 시조는 지은이가 여자인 것으로 보인다. 봄날 막 돋아난 버드나무 사이로 꾀꼬리가 부지런히 오간다.

시인은 이런 광경을 마치 꾀꼬리가 실 사이를 오가며 옷감을 짜고 있는 것으로 상상한다. 봄 세 달 동안 꾀꼬리는 버드나무 아래를 오가며 푸르름을 옷감처럼 짜나가는데, 그것을 지켜본다는 것은 몹시 힘들었다. 온통 시름이었던 것이다. 왜 시름인가? 위 '봄날은 간다'처럼 누군가를 간절히 기다리기 때문이다. 그렇게 어렵게 봄날을 지켜왔는데 누군가는 봄이 지나고 나니 푸른 풀과 잎들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한다. 인고(忍苦)의 봄날을 보낸 결과가 녹음방초인데, 아름답다고 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녹음방초란 바로 봄날 온통 힘들게 보낸 자신의 시름의 결과물인 것을. 녹음방초란 아름다움이 아니라 아픔이란 것을 표현하고 있는 매우 세련된 시조다. 이 두 편의 노래는 남성의 부재(不在)로 인한 여인의 한이 기저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봄 노래가 이토록 한스럽기만 한가?

"청강(淸江)에 비 듣는 소리 그 무엇이 우습관데/ 만산홍록(滿山紅綠)이 휘두르며 웃는고야/ 두어라 춘풍(春風)이 몇 날이리 웃을 대로 웃어라."

훗날 효종이 되는 봉림대군(鳳林大君)의 시조다. 맑은 강에 비 떨어지는 소리가 그 무엇이 우습길래, 온 산을 뒤덮은 꽃과 풀이 온몸을 흔들며 웃는가. 내버려 두어라. 봄바람이 며칠이나 가겠느냐, 만산홍록이 웃고 싶은 대로 웃도록 그냥 두어라. 이 시조는 봄날 바람이 불고 비가 오니, 마치 강에 비 떨어지는 소리에 온 산에 꽃과 풀이 웃는 듯하다는 것을 의인화해서 노래한다. 왕자답게 호방하게 큰소리를 친다.

올해 봄꽃은 때 이른 더위에 한꺼번에 피더니 비바람과 갑작스러운 추위에 일제히 졌다. 그렇게 짧은 봄날은 갔다. 그러나 어쩌랴. 그것도 섭리인 것을. 봄날은 가라.

하응백 문학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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