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날 보러 와요] 유교문화박물관 '화초연'

"학문 정진하라" 늦깎이 관리 감동시킨 선물

유교문화박물관이 개최하는 올해 문중 특별전의 주인공은 고성 이씨 문중이다. 가로 21.3, 세로 14.5, 높이 3.6㎝의 화초연(花草硯). 유교문화박물관 제공
유교문화박물관이 개최하는 올해 문중 특별전의 주인공은 고성 이씨 문중이다. 가로 21.3, 세로 14.5, 높이 3.6㎝의 화초연(花草硯). 유교문화박물관 제공

고성 이씨 문중 소장 벼루

정조 때 참의 지낸 인물이

문과 급제 축하하며 건네

감사하는 마음 16자 한시

직접 양 측면에 새겨넣어

조선 반가 사회 관계망 이해

사료적 가치도 적지 않아

유교문화박물관은 조선의 도서관을 옮겨놓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량의 현판, 목판, 서적이 저장돼 있어서다. 50만 점이 넘는다니 '산더미처럼'이라는 말이 제법 어울린다. 심지어 연구원들도 "이제 수장고에 들어가면 언제 또 보겠니"라고 자료와 작별 인사를 나눌 정도라니.

그래서 박물관 측은 해마다 소장 자료를 중심으로 '문중 특별전'을 연다. 15회째인 올해의 주인공은 고성 이씨 문중 소장품이다. '은둔과 개혁, 군자의 삶'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선비정신을 강조한 소박한 모습이 두드러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중 대표 전시물이 '화초연'(花草硯)이라는 벼루다. 임노직 관장의 설명이다.

"벼루는 선비들이 가장 중요시해 온 문방사우의 하나로 문자 생활의 필수품이다. 사대부 사이에서는 선물로도 많이 주고받았으며 스승과 제자 간에 전수할 정도로 상징성을 지니는 게 벼루다. '화초연'의 주인은 조선 정조 때 문과에 급제해 사헌부 지평 등의 관직을 지낸 대계 이주정(1750~1818)이다."

겉으로 보기에 심심하기 짝이 없는 벼루였다. 벼루의 양 측면에 '고사리가 아니라면 파초다. 왼쪽에 지도를 두고 오른쪽에 책을 둔다. 이숙께서 나에게 주시면서 바윗돌 같은 굳센 마음을 권하신다'는 뜻의 16자 한시가 적혀 있는 게 눈에 띌 뿐. 특징적인 걸 하나 더 꼽자면 고사리잎인지, 파초잎인지 모를 화석 무늬가 벼루 겉면에 박혀 있다는 것이었다.

우선 16자 한시의 사연을 풀이하자면 이렇다. '이숙'은 참의를 지낸 채홍원의 자(字)다. 정조 때 영의정을 지낸 번암 채제공의 아들이기도 하다. 채홍원은 정조가 총애한 관료였다. 정조 시기의 개혁 인물로 30대 중반에 승지와 이조참의를 지냈다. 이주정은 채홍원에게서 벼루를 선물로 받고 명문을 지어 감회와 의미를 부여한 것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의 나이다. 채홍원은 1762년생이고 이주정은 1750년생이다. 띠동갑이다. 30대 중반의 채홍원이 50세를 바라보는 이주정에게 선물을 보낸 것이다.

현대식으로 표현하자면 정권의 젊은 피가 갓 발을 내디딘 늦깎이 관리에게 열심히 학문에 정진하라며 벼루를 선물로 줬고 이에 감동한 관리가 애지중지해온 물건이다. 그 물건이 200년 세월을 넘어 전시되는 셈이다.

'화초연'은 용도에 충실한 모양새다. 물을 붓는 오목한 부분이 '을'(乙)

자 형으로 파여 있다. 먹을 가는 부분을 제외하고는 자연석 그대로를 살렸다.

임 관장은 "유학자의 관점에서 고사리는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 충절을, 파초는 무궁한 생명력을 의미한다. 어떻든 이러한 형태는 공예 예술적 측면에서도 독특한 제작 기법으로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 채제공 부자와 고성 이씨 이주정 집안 간의 대대로 사귀어온 정이 담겨져 있다. 그러기에 양반가의 사회 관계망을 이해하는 물증으로 사료적 가치가 적지 않다. 16자의 명문은 이주정의 저술인 '대계집'에도 그대로 실려 있어 벼루에 얽힌 사연이 사실에 근거한 것임을 입증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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