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한 달에 한 번
노을처럼 붉디붉은 잉크로 장문의 연서를 보내왔다
미루어 짐작컨대
달과 주기가 같은 걸로 봐서
멀리 태양계에서 보내는 것으로만 알 뿐
그때마다 내 몸은
달처럼 탱탱 차오르기도 하고
질퍽한 갯벌 냄새 풍기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그 편지
찔끔, 엽서처럼 짧아지더니
때로는 수취인 불명으로 돌아갈 때도 있다
아마 머잖아 달빛으로 쓴 백지 편지가 될 것이다
불립문자가 될 것이다
허나 그것이 저 허공 속 만개한 이심전심이라면
이렇듯 일자 소식 없는 것이 몸경이라면
저 만면 가득한 무소식이야말로 환한 희소식
누군가의 말대로 내 몸 이제 만월에 들겠다
―시집 『흐드러지다』 (천년의 시작, 2013)
* * *
여성의 몸은 일생 동안 다섯 단계로 생리 변화를 겪는다. 유소아기, 사춘기, 성숙기, 갱년기, 노년기로 나뉘는데, 그 시기에 따른 생체 리듬의 큰 변화 중의 하나가 '달거리'이다. '달거리' 또는 '월경'(月經)의 어원은 달이 차고 이우는 주기적 현상에서 말미암은 것이다. 월경 주기는 달뿐만 아니라 조수와 계절 등의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따라서 '월경'을 '달의 경전' 내지는 '몸의 경전'으로 읽어 낸다는 건 제법 그럴싸하지 않은가?
붉은 노을 편에 다달이 부쳐오는 연서가 여성의 달거리라니! 더구나 여성의 나이와 생리적 변화에 따른 달거리를 '장문의 연서' '짧은 엽서' '백지 편지' '무소식' 등등으로 비유한 바가 아주 제격인지라. 일자 소식 없는 폐경을 '불립문자'라 함은 문자가 아니라 마음으로 깨닫는다는 뜻으로, "저 허공 속 만개한 이심전심"이나 "저 만면 가득한 무소식"이 긔 아니던가? 감감무소식을 환한 희소식으로 여기는 것이야말로 시적 자아가 '만월'이라는 득도의 경지에 이미 다다른 방증이리라.
시인 · 문학의 집 '다락헌'상주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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