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설렘과 신비의 대륙 남미를 가다] <8>지구촌에서 가장 긴나라 칠레

◆ 남미여행의 전환점, 충전의 도시 산티아고

칠레는 '세계에서 가장 긴 나라'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남북 총 길이는 약 4,300㎞로서 북쪽에는 아타카마의 뜨거운 사막지대부터 중남부에는 피오르 해안의 온화한 기후와 남부에는 얼어붙은 빙하 지대가 있다. 수도 산티아고(Santiago)는 칠레의 정치, 문화, 관광의 중심지이자 남미를 여행하는 여행자에게는 시계방향으로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시작하든, 반시계 방향으로 페루의 리마에서 출발하든 여행의 전환점이 되는 도시이다. 그래서 산티아고는 여행자들이 잠시 쉬어가는 남미여행 충전의 도시이기도 하다.

소또 마요르 광장의 칠레 해군 영웅
소또 마요르 광장의 칠레 해군 영웅 '아르투로 프랏'의 동상과 태평양전쟁의 영웅들.

소또 마요르 광장의 칠레 해군 영웅
소또 마요르 광장의 칠레 해군 영웅 '아르투로 프랏'의 동상과 태평양전쟁의 영웅들.

다른 중남미 도시와 마찬가지로 산티아고의 중심 '아르마스 광장'(Plaza de Armas)에 도착하면 산티아고 옛 건축물들과 대성당을 만날 수 있다. 번잡한 골목길을 걸으며 이 곳 시민들의 삶을 엿보는 것도 재미있다. 이곳에는 침략자의 동상과 그 침략자에 맞서 싸웠던 민족 지도자의 동상이 나란히 마주보고 있는 아이러니가 여행자를 불편하게 하기도 하는데 칠레인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궁금해지기도 했다.

광장 한쪽에는 산티아고를 건설한 '페드로 데 발디비아'(Pedro de Valdivia)의 큰 기마상이 자리잡고 있다. 잉카제국을 정복한 '피사로'(Francisco Pizarro)의 부하였던 페드로는 1541년 산티아고를 세웠다. 그러나 이 땅은 원래 '마푸체'(Mapuche)족의 땅이었다. 막강한 잉카 제국에 맞서 자신들의 영토와 문화를 유지해 왔던 마푸체족은 결국 스페인 침략자들에게 정복당한다. 광장의 다른 한쪽에는 페드로의 기마상과 대조적으로 내 목에 건 하회탈을 닮은 마푸체인의 인물 석상이 있다. 단단한 동으로 조각된 페드로와 깨지기 쉬운 돌로 만들어진 마푸체족의 대비가 매우 인상적이다.

광장을 중심으로 대성당과 시청, 국립역사박물관 등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고, 광장 야자수 나무 그늘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여행자들과 시민들이 모여서 즐기고 있다. 그들의 대열에서 낯설지만 당연하게 여겼던 작은 행복들을 새로 누렸다. 시내 여기저기를 관심있는 지하철을 타고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도 온몸 가득 활기가 밀려 왔다. 커피가 유명하다는 카페에서 여행수첩에 낙서를 하고, 유서 깊은 레스토랑에서 파스타를 먹으면서 여행자의 여유를 부릴 수 있었다.

산티아고 지하철은 노선별 색상이 다른 6개의 노선망으로 시설이 잘 갖춰져 있고 많은 시민들이 이용한다.
산티아고 지하철은 노선별 색상이 다른 6개의 노선망으로 시설이 잘 갖춰져 있고 많은 시민들이 이용한다.

산티아고 지하철은 러시아워의 혼잡을 고려하여 이용 시간대에 따라 요금이 다르다.
산티아고 지하철은 러시아워의 혼잡을 고려하여 이용 시간대에 따라 요금이 다르다.

산티아고 지하철은 중남미 국가들 중에는 노선별 색상이 다른 6개의 노선망으로 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시민들의 대중교통은 물론 여행자들이 이용하기에 가장 편리한 교통수단으로 요금은 구역이 아니라 러시아워의 혼잡을 고려하여 이용 시간대에 따라 다르다. 지하철을 타기 위해서는 선불카드인 'Bip! card'를 사야 한다. 이카드는 지하철뿐만 아니라 버스와 교외전철에서도 사용하고 환승이 가능하다.

시장을 가야만 살아가는 모습들을 볼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중앙시장(Mercado Central)을 찾았다. 이 나라에서 많이 나는 생선과 과일 값이 제일 싸고, 수산물 강국답게 생선을 판매하는 곳에 활력이 넘친다. 시장에 들어서자마자 왜 이렇게 저렴한지 눈이 휘둥그레졌다. 시장을 출발해 어두워지기까지 대표적인 관광지인 대통령궁과 산크리스토발언덕, 누에바거리 등을 걸으며 활기차고 들여다볼수록 매력을 뿜어내는 산티아고를 가슴에 담았다. 광장의 북적거리는 인파 속에서 잠깐 지친 여행자는 색다른 에너지를 받을 수 있었다.

백화점에 포장되어 귀한 취급을 받을 프리미엄 와인도 이곳에서는 동네 술가게에 대충 가득 꽂혀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싸다는 이유만으로 몇 병을 들고 와서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도 않는 것은 이미 이곳의 아름다움에 취한 뒤여서일까?

경사진 골목길에 알록달록 그려진 벽화들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경사진 골목길에 알록달록 그려진 벽화들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 칠레인 그라피티의 천국 발파라이소

세계유네스코에 등록된 발파라이소(Valparaíso)는 '천국의 골짜기'로 불리는 매력적인 도시로 칠레를 여행한 대부분의 여행자가 우선 추천하는 곳이다. 산티아고에서 시외버스로 2시간을 달려 도착한 발파라이소는 대구만큼이나 높은 건물과 넓은 도로들로 이루어진 산티아고와는 다른 모습으로 이곳이 진정한 칠레를 보는 듯 했다. 따가운 남미의 햇살에 익숙해져 있었지만 발파라이소의 태평양 바닷바람은 나를 설레게 했다. 그러나 민박집 주인과 친절한 여행자도 배낭을 앞으로 메고, 소매치기와 마약 깡패를 주의하라고 단단히 일러 주었다.

시내버스 안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승객과 키스를 하는 젊은이와 동승했다.
시내버스 안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승객과 키스를 하는 젊은이와 동승했다.

시내버스 안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사람과 키스를 하는 젊은 승객과 동승했다.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낡고 빛바랜 건물들을 보며, 하나같이 각자의 색과 존재감을 드러내며 거리 곳곳을 지키고 있는 시가지를 찾았다. 시내 전망을 보고자 '콘셉시온'(Concepcion)언덕으로 올라가기 위해 운행을 시작한지 130년이 지난 이곳의 명물인 경사형 엘리베이터 '아센소르'(Asensor)를 탔다. 덜커덩거리는 바퀴와 삐걱거리는 고풍스러운 장롱 같은 나무상자가 지상과 높은 언덕을 오르내리며, 언덕 위아래로 걸어 오르는 고단함을 덜어주고 있다. 나는 오래된 흑백영화의 주인공처럼 철제 회전봉을 밀고 나무로 된 발판을 지나 언덕으로 나왔다.

언덕위 아래를 오르내리는 130년 된 경사형 엘리베이터 아센소르( Ascensor) 전경.
언덕위 아래를 오르내리는 130년 된 경사형 엘리베이터 아센소르( Ascensor) 전경.

언덕 위에 오르면 발파라이소가 한눈에 들어온다. 주거지역은 둥글게 바다를 둘러싸고 있는 구릉지대의 가파른 비탈과 골짜기에 자리하고, 태평양의 진한 파란색의 바다와 그 위에 떠있는 대형 선박이 어우러진 광경 또한 일품이다. 역시 발파라이소는 언덕의 도시다. 경사진 골목길에 알록달록 그려진 벽화들이 나를 불러 세우며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아늑한 해안 마을의 정취와 정리되지 않은 빛바랜 골목 사이에도 그들의 삶이 새겨져 있다. 이곳의 벽화는 1970년부터 '열린 하늘 박물관'으로 알려진 칠레의 유명한 벽화가와 이곳 가톨릭대학 미술학과 학생들의 프로젝트가 큰 기점이 되었다고 한다. 언덕 위 색색의 집들이 태평양을 바라보며 빽빽하게 들어서 있어 천국의 골짜기를 연상시키는 언덕에 집들이 자리하고 있는 이색적인 풍경은 마치 부산 감천마을 벽화와 비슷한 느낌을 주고 있다. 그들의 진솔한 표현의 모습을 마주하며 언덕에 앉아 작은 감동을 담아내고 있었다.

태평양의 진한 파란색의 바다와 그 위에 떠있는 대형 선박이 어우러진 발파라이소의 해안.
태평양의 진한 파란색의 바다와 그 위에 떠있는 대형 선박이 어우러진 발파라이소의 해안.

상업지대를 이루는 낮은 지대는 아름다운 공원과 오래된 성당, 여러 대학이 있는 문화중심지다. '산티아고의 바다 현관'이라고 불린 항구도시 발파라이소는 파나마 운하가 개통되기 전까지는 남미에서 가장 큰 항구였다고 한다. 바다 주변의 선술집들에서는 옛 향수가 묻어나오는 것 같았다. 내 눈을 사로잡은 매력적인 언덕 위의 그라피티만큼이나 항구의 골목마다 흘러나오는 그들의 음악이 여행자를 감성에 젖어들게 만든다. 나는 말없이 그들의 리듬에 빠져 들었다.

발파라이소의 칠레 해군본부, 발파라이소는 무역항이자 칠레 최대의 군항이다.
발파라이소의 칠레 해군본부, 발파라이소는 무역항이자 칠레 최대의 군항이다.

부두에는 크루즈 선박과 작은 배들, 그리고 해군 본부가 있어서인지 큰 군함도 떠 있다. 언덕 위에서 바라본 고요함은 간데 없이 항구에는 활기가 넘친다. 이곳 발파라이소에는 칠레인들의 역사가 녹아 있고, 그들의 오래된 꿈과 구성진 소리가 묻어나고, 지치지 않는 삶의 현장이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안용모 자유여행가·전 대구시 도시철도건설본부장 ymahn110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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