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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없으면 다 소용없어, 학도의용군 참전용사의 외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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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렬 옹 "이 땅에 두 번 다시 전쟁은 일어나지 않아야"

6.·25 전쟁 당시 학도의용군으로 참전한 권정열 옹이 당시를 기억하고 있다. 이상원 기자
6.·25 전쟁 당시 학도의용군으로 참전한 권정열 옹이 당시를 기억하고 있다. 이상원 기자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몸서리가 처져. 전쟁이 얼마나 무서운 건지 지금 세대는 너무 몰라. 나라가 없으면 다 소용없어"

6·25 전쟁 당시 학생의 신분으로 전투에 참전했던 학도의용군 출신 권정렬(87·포항시 남구 대이동) 옹의 회상이다. 그는 당시 동지상공중학교(현 동지중)에 다니다 펜 대신 총을 들고 인민군 5사단과 12사단에 맞서 싸운 영웅이다.

군번도, 계급장도 없이 전쟁터로 뛰어든 학도의용군들은 지병과 숙환으로 대부분 세상을 떠나고 권 옹을 비롯해 3명 정도 생존해 있다.

권 옹은 "함께 싸웠던 학우들이 하나 둘 세상을 떠나 이제는 몇 명 남지 않아 마음이 무겁다"면서 "하루빨리 평화통일이 이뤄져 하늘나라에서 학우들이 웃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1950년 8월 11일 인민군이 포항까지 내려온다는 소식을 듣고 포항에서 친구 20여 명과 국군 3사단 공병대에 징집돼 전쟁터에 나갔다"고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을 떠올렸다.

제대로 된 군사훈련을 받지 못한 채 총에 실탄을 장착하는 방법만 교육받고 곧바로 전투에 참가한 권 옹은 포항의료원에서 포항역 방향으로 침투해 오던 인민군 정찰부대에 맞서 첫 교전을 벌였다.

이후 영화 '포화 속'으로의 배경이 된 포항여중 전투에도 참전하며 학도병으로서 전공을 세워나갔다.

하지만 그는 "밤이 되면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인민군들이 무서워 학생들이 눈물을 흘리며 서로 손을 잡고 공포감을 떨쳐 내야만 했다"면서 "어린 나이에 총알이 머리 위를 지나갈 때마다 죽음에 대한 공포감은 이루 말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다행히 미군의 참전으로 승기를 잡은 국군을 따라 강원도 양양까지 진격하는 기쁨도 맛본 권 옹은 9개월의 학도의용군 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권 옹은 학도의용군으로 군인 아닌 군인생활을 했지만 이를 증명할 수 있는 서류가 없어 성인이 되자 다시 군에 입대해야만 했다. 그는 "그때 육군 7사단 의장대에 입대했는데 사단장이 고 박정희 대통령이었다"며 인연을 강조했다.

권 옹은 학도의용군에 대한 제대로 된 예우가 갖춰지길 희망했다. 장사상륙작전 등 많은 전투에서 순국한 수백 명에 달하는 학도의용군에 대한 예우가 국가적 차원에서 이뤄졌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는 "그나마 포항에 학도의용군 전승기념관이 있어 학생들이 견학을 통해 선배들의 희생정신을 기릴 수 있어 다행이다"고 말했다.

권 옹은 매일 포항 수도산에 있는 학도의용군 전승기념관에 들러 학생들에게 강의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는 "학도의용군 정신은 포항의 정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자라나는 세대가 나라의 소중함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 "젊은 세대의 안보관이 약해지는 것이 아쉽다. 요즘 세대는 전쟁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른다"고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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