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인들은 피가 심장을 거쳐 온 몸으로 순환하듯 도시 중심부로 모였다가 흩어진다. 거주하는 사람(상주인구)보다 낮 시간대 들어오는 사람(주간인구)이 많은 지역을 '도시의 심장부', 즉 도심(都心)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주간인구지수(주간인구/상주인구)가 165.79%에 달하는 대구 중구가 대표적이다.
심장 질환이 생명 유지에 치명적이듯 도심에 발생한 재난은 그 도시의 명운을 가르기도 한다. 물자와 사람이 모여드는 도심에서 대형 재난이 일어나면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기 때문이다. 이는 도심에서 발생하는 재난은 보다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 사회적 재난에 유독 취약한 대구 도심
지난 2016년 11월 30일 오전 2시 4분, 대구 서문시장 4지구 남서편에서 검붉은 연기가 치솟았다. 화마(火魔)는 좁은 상가에 겹겹이 쌓인 의류와 원단 등을 먹어치우며 거침없이 확대됐고, 무려 58시간 동안 꺼지지 않고 버텼다. 이 불로 서문시장 4지구 679개의 상가점포가 모두 탔고, 재산피해는 469억여 원에 달했다.
김홍관 서문시장 4지구 재건축위원장은 "오전 3시쯤 연락을 받고 뛰어갔더니 모든 게 불타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숨이 막히고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면서 "2년 가까이 흘렀지만 여전히 각 상가는 소화기를 매주 점검하고, 전기 코드도 퇴근할 때는 모두 뽑을 정도로 트라우마가 여전하다"고 말했다.
유동인구나 상가가 많은 대구 도심은 자연재난보다는 화재나 교통사고, 강력 범죄 및 생활안전 등 이른바 '사회적 재난'에 취약하다.
행정안전부가 지난 2016년 발표한 지역안전지수에 따르면 중구는 화재 분야에서 대구 8개 기초지방자치단체 중 가장 낮은 5등급을 받았다. 중구에는 2012~2016년 인구 1만 명 당 평균 12.2건의 화재가 발생했다. 이는 가장 화재가 적었던 수성구(4.20건)보다 3배 가량 많은 수치다.

교통사고와 범죄, 생활안전 등도 도심에 가까워질수록 안전지수가 떨어진다. 중구는 화재, 교통사고, 강력범죄, 생활안전 등 4개 분야에서 모두 5등급에 그쳤고, 동구와 서구, 남구 역시 3, 4등급에 머물렀다. 반면 부도심에 가까운 수성구, 달서구, 달성군은 대부분 1, 2등급 수준이었다.
이는 도심으로 갈수록 노인·여성·청소년 등 사회적 재난 취약 계층이 많은데다 음식·주점업, 전통시장 등 취약시설이 밀집한 탓이다.
행안부에 따르면 대구에 사는 재난약자는 중구가 2천530명으로 가장 많았고, 남구(2천333명), 동구(2천217명), 서구(2천34명) 등의 순이었다. 반면 부도심인 달성군(1천810명)과 달서구(1천761명) 등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재난 취약시설인 음식·주점업 종사자도 중구가 1천379명으로 가장 많았고 도심에서 멀어질수록 감소했다.
양광석 대구시 사회재난과장은 "도심은 대형 건물과 다중이용시설이 많은데다 거주자 평균연령도 높아 사회적 재난이 자주 일어나고, 대형 재난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높다"며 "행정당국이 다중이용시설에 대한 스프링클러 설치 지원, 비상통로 점검 등을 정기적으로 실시해 취약 부분을 보완해야한다"고 말했다.
◆ 취약 지점에 정밀하게 접근해야

대형 재난은 다중이용시설에서 주로 발생하고, 피해자는 노인이나 여성이 다수를 차지한다. 지난해 12월 발생한 충북 제천스포츠센터 화재 당시 도심 한복판의 복합상가에서 불이 나 37명이 다치고 29명이 숨졌다.
특히 사망자 29명 중 23명은 여성이었다. 올 1월 경남 밀양 세종병원 화재 당시에도 사망자 46명 중 대부분이 미처 대피하지 못한 노인들이었다.
전문가들은 사회적 재난에 취약한 도심은 '재난약자'와 '취약시설 밀집'이라는 두 가지 측면을 모두 고려해 세심하게 대응해야한다고 조언한다.
도시 전체를 포괄하는 안전대책을 중심으로 재난약자와 취약시설에 대한 맞춤형 예방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 특히 도심에서 발생한 재난은 대규모 피해를 동반한다는 점을 고려해 재난 분야별로 주요 피해 대상과 지역을 평가·분석하고, 유효적절한 대책을 만드는 작업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재난 대응에 대한 정책의 패러다임도 바뀌어야한다. 재난의 단계는 대체로 '예방→대비→대응→복구' 등 네 단계로 구분된다. 그동안 국내에서는 재난 대응과 복구에 초점을 맞춰 대책을 수립해왔다. 그러나 보다 효율적인 안전대책이 마련되려면 예방과 대비를 체계화한 '관리'를 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최용준 대구경북연구원 연구원은 "최근 재난방재는 재난 취약 시설 및 계층에 대한 체계적인 정보를 구축해 재난을 관리하는 수준으로 발전하고 있다"면서 "재난 유형과 피해 예상 계층 별로 각각 다른 관리 시스템을 적용해야 재난 발생 시 최적화된 대응을 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또한 "아직도 재난 방재 시스템 구축을 경제적인 시각으로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인명이 걸린 문제인 만큼 타당성 조사 등에도 유연성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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