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평 아파트의 1년 임대료가 1천300원이다. 정말 이런 아파트가 있을까? 있다. 독일 바이에른주 아우크스부르크라는 도시에 '푸거라이'라는 사회주택이 있다. 1521년 거부였던 야콥 푸거가 빈민 구제를 목적으로 설립한 세계 최초의 사회공동주거시설이다.
푸거가 운영했던 푸거 은행은 중세 말 유럽의 최대 은행이었다. 주요 고객은 황제, 교황, 영주, 추기경, 주교, 상인계층이었다. 푸거 은행에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카를 5세에게 빚 독촉 편지를 보낸 것이 공개되어 있다. 황제가 은행 빚 독촉장을 받고 안절부절못했을 장면을 상상해보라. 당시 은행의 부와 권세를 짐작할 만하다.
그는 그렇게 번 돈으로 가난한 자들을 위한 보금자리를 만들었다. 현재는 건물이 67개, 거주 공간이 142개로 150명 정도가 이곳에 살고 있다. 이곳은 워낙 넓어서 도시 내지는 마을처럼 보인다. 1만5,000평 면적의 대지 위에 8개의 골목과 7개의 대문이 있고, 교회, 정원, 분수대, 레스토랑 등 필요한 모든 것이 갖춰져 있으며, 과거에는 학교도 있었다고 한다. 천재 작곡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증조부인 '프란츠 모차르트'가 이곳에서 살았다. 모차르트도 푸거의 도움을 받은 셈이다.
설립 당시 1년 임대료가 1굴덴이었던 전통을 이어받아서 오늘날에도 1유로의 임대료를 받고 있다. 500년 전 당시로서도 획기적인 일이었다. 그런데 푸거라이가 설립된 이래 5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푸거 가문에서 대를 이어 운영 및 관리를 감당하고 있다니 더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지금도 푸거라이를 유지하는 푸거라이 재단이 수익성을 내면서 여전히 건재하고 있다. "큰 부자는 하늘이 낸다"는 말처럼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다.
우리는 가을의 한가운데 서 있다. 참 아름다운 계절이다. 내가 외우는 시가 별로 없어서인지, 가을에 한 번은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가을날'이란 시를 떠올린다. "주여,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집을 짓지 않습니다… 나뭇잎이 바람에 휘날리면, 가로수 길을 이리저리 헤맬 것입니다."라는 구절이 가슴을 찡하게 한다.
가을날 누구는 풍성한 추수를 거두고, 누구는 새 포도주의 향기를 기뻐하는데, 집 없는 사람은 바람 부는 가로수 길을 헤맨다. 가을날 집 없는 이의 아픔이 눈앞에 그려진다. 점점 더 서늘해져 가는 날씨의 변화를 나날이 느껴가며 겨울의 추위까지 걱정이 된다.
우리 청년들의 처지가 걱정이다. 인생의 가을까지 집 없이 지내고, 집을 소유하는 것을 완전히 포기해 버릴지도 모를 많은 청년들의 아픈 삶이 오버랩된다.
집은 인생이다. 집은 삶이다. 삶은 사랑이어야 한다. 그래서 집은 사랑이다. 사랑이 있는데 집이 없다면 참 어려운 일이다. 사랑할 공간이 있어야 결혼도 하고 아이도 출산할 것이 아닌가?
푸거는 자본주의 이전의 자본가였지만 집만큼은 시장 논리로 보지 않았다. 사랑의 논리로 보았다. 집은 사랑이다. 집은 사랑이 머무는 공간이다. 이제 집에서 재산, 소유권, 투자, 시장이란 단어를 떼어내자. 집은 삶, 인권, 사랑임을 강조하자.
가진 것이라곤 집 한 채밖에 없어서 집값이 오르길 소원하는 부모의 평범한 기대가 이제 막 직장을 구하고 결혼을 하려고 발버둥 치는 자식에게는 저주라는 것을 아는가? 부모의 집값이 오를수록 자식 세대는 고생을 할 것이다. 집값의 고공행진이 민족 최대의 저주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 시대의 저주다. 집을 자산으로 보는 시각이 사랑의 시각으로 바뀔 때까지 우리 시대의 저주는 풀리지 않을 것이다.
청년이 지금은 사회적 약자이지만 미래는 기성세대의 후원자다. 기성세대가 자신들의 노년의 후원자의 싹을 눌러버리면 극심한 손해다. 우리 시대의 푸거는? 거기 누구 없소?
대구중앙교회 대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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