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이찡에서 스좌좡까지는 얼마나 될까. 늙은 관절처럼 헐거운 고물 택시, 헉헉거린 지 몇 시간, 낮게 드러누운 지평선을 끌어안아도 발가벗은 평원(平原)은 바람마저 숨긴다. 이따금 미라처럼 나뒹구는 붉은 벽돌들이 돈황에 관한 소문을 아느냐고 묻는다. 근무력증(筋無力症)이 끌고 온 굽은 길의 흙먼지들은 스좌좡이 장개석의 마지막 패전장이었음을 말해준다. 부리 검은 새 떼 자욱한 황사 속을 떠돌 뿐 숨겨 놓은 명의(名醫)는 좀체 보여주지 않는다. 골목의 대문들조차 붉은 부적으로 햇살의 입구를 막아 버린다. 스좌좡에 이르는 꽃 피는 길이 보이지 않는다.
―시집 '생강나무'(모아드림,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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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아들은 어릴 때부터 근무력증을 앓았다. 근육이 점점 약화되거나 위축되는 희귀병으로, 나중엔 움직이지도 못하거나 호흡 곤란을 겪는 불치의 병이다. 그래서 시인은 명의를 만나 아들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제약 도시라 불리는 스좌좡까지 "늙은 관절처럼 헐거운 고물 택시"로 헉헉거리며 달려간다. 마치 진시황이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신하를 동방으로 보냈듯이.
하나, 사막 속의 샘을 꿈꾸며 당도한 스좌좡은 "근무력증(筋無力症)이 끌고 온 굽은 길의 흙먼지"로 가득하고, 국공 내전 때 그곳이 "장개석의 마지막 패전장"이었다는 데서 불길한 예감에 휩싸인다. 아니나 다를까, "부리 검은 새 떼 자욱한 황사 속을 떠돌"거나 "골목의 대문들조차 붉은 부적으로 햇살의 입구를 막아 버리"어서 명의나 명약을 구하리라는 실낱같은 희망은 물거품이 되고 만다.
그로부터 숱한 아픔과 견딤의, 천붕(天崩)의 나날이 지났던가? 오호애재(嗚呼哀哉)라! 결국 스물다섯 나이에 가족과 영결(永訣)하고 말았으니. 미처 꽃피지 못한 아들 한욱이의 맑은 넋은 팔공산 묘향사에 깃들이어 고이고이 잠들어 있다.
시인·문학의 집 '다락헌' 상주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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