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 文대통령, 소심과 우유부단함의 정치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박병선 논설위원
박병선 논설위원

2016년 말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때의 일이다. 당시 문재인 후보는 인터넷에서 '고구마'로 불렸다. 이재명 후보는 자신을 '사이다'라고 치켜세웠다. 소위 '고구마'와 '사이다' 논쟁이다. 고구마는 답답하고 융통성 없음을, 사이다는 시원하고 청량함을 준다는 의미다. 문 후보는 "고구마를 먹으면 배가 든든하다"는 말로 공세를 피해갔는데, 자신의 재치인지 측근의 아이디어인지는 모르겠다.

요즘 두 분에 대한 평가를 새로 하면 이재명 경기지사는 아무래도 '사이다'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고, 문재인 대통령은 '고구마'라는 별명이 딱 맞는 것 같다. 정국 상황을 보고 있으면 체한 듯 답답하고 거북한 느낌이 든다. 적폐 청산은 정치 보복에 가까운 듯하고, 경제 살리고 일자리 만드는 것은 거꾸로 가고 있고, 남북관계는 허둥지둥하며 허점만 노출한다. 구호는 드높지만, 무엇 하나 매끄럽게 진행되는 것이 없다.

문 대통령을 아는 지인들은 '점잖다' '과묵하다' '마음이 모질지 못하다'고 평가한다. 대통령이라고 꾸며서 하는 말이 아니라, 실제로 그러하다. 문 대통령 비판자들은 이를 뒤집어 '소심하다' '논리에 투철하지 않다' '우유부단하다'고 평한다. 요즘처럼 어려운 시기에는 문 대통령 비판자들의 평가에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국정에 문 대통령의 소심함과 우유부단함이 그대로 투영돼 있는 것 같아 더 답답하다.

대통령의 성품이 정부의 정책 방향을 좌우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제왕적 대통령제에서는 참모와 관료들이 대통령의 뜻에 따르지 않을 수가 없다. 소심과 우유부단함이 현 정권의 드러나지 않은 특징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문 대통령의 소심과 우유부단함의 사례는 수없이 많다. 문 대통령은 이제까지 자신의 지지층에 대해 거북한 행동이나 쓴 말을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민노총이 과격 행동을 일삼아도, 측근이 아무리 경제를 망쳐도, 문빠가 '18원' 문자폭탄을 날려도, 모두 눈감아 준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뒤로 딴짓을 해도 별말 없이 감싸안고 만다.

마음이 넓어서가 아닌 것 같다. 혹시라도 적극 지지층에게 욕먹지 않을까, 따돌리지 않을까 하는 소심함의 발로가 아닐까 싶다. 1년간 논의 끝에 마련한 국민연금 개편안을 재검토하는 것도 우유부단함의 다른 표현이다.

문 대통령은 자신의 지지층 외에는, 고개를 돌리지 않는다. 1970, 80년대식 진영 논리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 탓이다. 평생 그렇게 살았고, 그 기준에서 벗어나는 법이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지층보다는 '실리'를 택한 적이 여러 번 있었지만, 문 대통령은 아직 그런 대범함을 보여주지 못했다.

경제가 아무리 어려워도, 최저임금 인상을 강행해야 하고, 기업을 압박하고 삼성현대 때리기를 멈추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다. '국가 이익'보다는 지지층이 요구하는 바를 그대로 행할 뿐이다. 문 대통령은 자신의 성격과 정책기조를 바꾸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지지층만을 위한 정치, 정책을 펴나가다 보면 진영 간, 계층 간, 지역 간 분란이 확대재생산될 것이 뻔하다. '고구마'보다는 '사이다'가 필요한 때이지만, 타고난 성격이 바뀔 지 의문이다. 우리는 선량하긴 하지만, 역사상 스케일이 가장 작은 대통령과 함께하는지 모른다.

최신 기사

0700
AI 뉴스브리핑
정치 경제 사회
미국은 베네수엘라의 마두로 정권을 '외국 테러 단체'로 지정하고 유조선 출입을 전면 봉쇄하며 압박을 강화하고 있으며, 군 공항 이전과 취수원 이...
두산그룹이 SK실트론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됨에 따라 경북 구미국가산업단지의 반도체 생태계가 주목받고 있다. SK실트론은 구미에서 300㎜ ...
서울 광진경찰서가 유튜브 채널 '정배우'에 게시된 장애인 주차구역 불법 주차 신고와 관련한 경찰의 대응에 대해 사과하며 일부 내용을 반박했다. ...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