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주향의 이야기와 치유의 철학] "누구나 얼굴에 흔적은 있어"

수원대 교수

한 사람이 가족으로 온다는 것은 하나의 세계가 찾아오는 거지요? 하나의 세계가 훌쩍 들어오니 삶의 지형이 바뀌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로 인해 바뀌는 삶이 반가울 수도 있고, 버거울 수도 있습니다. 혹은 반가우면서 버거울 수 있지요? 만약 평범하지 못하고 남들과는 다른 결을 가진 존재가 가족으로 온다면 어떨까요?

남들과 다르게 태어난 사람들이 있습니다. 태어날 때는 평범하고 건강했으나 살면서 장애를 겪게 된 사람들도 많습니다. 지체 장애를 겪는 사람들, 발달장애를 겪는 사람들, 정신장애를 겪는 사람들, 사고를 당한 사람들, 그들을 가족으로 둔 까닭에 남들과는 다른 아픔과 괴로움과 외로움을 겪으며 좌절하거나, 다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하는 '원더(Wonder)'라는 영화, 보셨습니까? 거기 주인공 어기는 남들과는 다른 흉한 외모를 가지고 태어납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다시 한 번 쳐다봅니다. 그런 불편한 시선을 감당하기에 어기는 아직 어려서 초등학교도 가지 않고 홈스쿨링을 해야 했던 소년입니다. 그래도 어기는 복이 있습니다. 엄마, 아빠, 누이가 모두 어기를 사랑하니까요.

의지할 곳이라곤 가족밖에 없는 아들을 둔 엄마와 아들은 한 몸인가 봅니다. 홈스쿨링을 접고 중학교를 들어간 아이가 외모 때문에 학교에서 받은 상처는 고스란히 엄마의 상처가 되지만 '원더'의 엄마는 아들의 상처를 성장점으로 바꿔낼 수 있는 따뜻한 어른입니다. 왜 난 이렇게 못생겼냐며 처연하게 묻는 어기에게 엄마는 따뜻하고도 단호하게 이렇게 말합니다.

"아니야, 넌 못생기지 않았어. 네게 관심 있는 사람들은 다 알게 될 거야. 누구나 얼굴에 흔적은 있어. 나의 이 주름은 너의 첫 수술 때 생긴 거고, 이 주름은 너의 마지막 수술 때 ... 얼굴은 우리가 갈 길을 보여주는 지도고, 또 우리가 지나온 길을 보여주는 지도야. 절대로 흉한 게 아니야."

참 좋은 엄마지요? 그 덕에 어기는 진실하고, 호기심 많고, 배려할 줄 아는 소년으로 자라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엄마를 어기에게 내어주고 엄마의 사랑에 목마른 채 외롭게 성장해야 했던 누이 비아는 어떨까요? 비아는 동생의 홀로서기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다 하는 엄마를 수긍하는 착한 딸이지만 그래도 허전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요? 동생에게 전적으로 엄마아빠를 빼앗기고 일찍 철들어야 했던 비아의 독백이 짠,합니다. '어기는 태양이다. 엄마와 아빠와 나는 그를 도는 행성이다. 부모님은 내가 이해심이 많다고 하지만 아니었다. 나는 그저 가족문제를 하나 더 보태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삽화 권수정
삽화 권수정

현실에서는 그런 가족이 많지요? 전적으로 돌봐야 하는 형제 혹은 자매 때문에 돌봄이 필요한 시기에 외로움을 친구 삼아 스스로 성장하느라 애늙은이가 되어버린 형제 혹은 자매! 양보가 일상이 되어버린 그 아이들의 외로움은 누가 받아주고 누가 돌봐주나요?

다행히 비아에게는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모두들 어기를 중심으로 도는 태양이지만 할머니에게는 비아가 태양이었습니다. "할머니는 세상에서 너를 가장 사랑한단다." 외로운 비아가 따뜻한 할머니에게 물었습니다. "어기는요?" 그 때 할머니가 어떻게 대답했을까요?

"어기도 사랑하지, 그런데 어기는 지켜주는 천사들이 많잖아. 네겐 내가 있다."

비록 그 할머니가 돌아가셨어도 사랑은 남는 거지요? 남아서 문득문득 비아를 숨 쉬게 할 공기가 되어주고 있습니다. 돌아보면 '원더'의 가족은 복이 있습니다. 최상의 복은 서로서로 사랑하는 것일 테니.

그래도 어기의 학교생활은 만만치 않습니다. 한심한 친구들은 편을 먹고 놀리는데, 학교에 정붙이게 해주었던 친구 잭이 뒤에서 딴소리 하는 것을 듣게 됩니다. 만약 자신이 어기처럼 생겼으면 자살했을 거라구요. 얼마나 망연해졌을까요, 갑자기 학교 자체가 정떨어지겠지요?

그런 저런 상황을 지켜봐야 하는 가족은 가족대로 속이 쓰리지만 어쩔까요? 힘겨운 싸움을 하는 전쟁터의 전사는 어기인데. 엄마아빠 누이가 어기를 아무리 사랑한다 해도 학교를 대신 다녀줄 수 없고, 대신 싸워줄 수는 없는 일입니다. 가족이 할 일은 대신 해주는 일이 아니라, 격려해주고, 지지해주고, 기다려주는 일일 테니.

잭도 그렇지요. 어기를 놓고 그렇게 심한 말을 하긴 했어도 그 말이 어기에게 전해질 줄은 몰랐을 겁니다. 그는 생각이 있는 친구니까요. 장난삼아 던진 돌에 어기가 피 흘리고 있었음을 뒤늦게 알게 된 잭은 비열했던 자기 행동을 뉘우칩니다. 그러나 참회의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네요.

잭은 부끄러운 자기행동으로 가장 좋은 친구를 잃어버렸음을 안타까워하고 있는데, 그 때 어기를 괴물이라 놀리며 괴롭히는 줄리앙을 봅니다. 잭은 불이익을 감수하며 비열한 줄리앙을 때려눕힘으로써 진정성에 가닿습니다.

어기를 괴롭혀왔던 줄리앙과 줄리앙의 부모를 면담하며 괴롭힘에 대해 단호한 학교 입장을 설명하는 교장선생님의 말씀도 인상적입니다. "어기의 외모는 바꿀 수 없어요. 그러니 우리가 시선을 바꿔야지요."

장애에 대한 시선이 많이 바뀌었지요? 평범하지 않은 사람, 뭔가 불편해 보이는 사람, 사실 그들은 우리의 시선과 연민을 받아야 하는 불쌍한 존재가 아니라 독특한 자기 운명을 마주하며 자기 생을 살아가는 고유한 존재입니다. 길에서 우연히 그런 사람을 만나면 그가 불편하지 않게 그들에게 시선을 주지 않고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것이 예의라는 것을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

평생을 장애인과 함께 살아온 의사, 장애인 인권이야말로 인권의 바로메타임을 강조하는 이일영선생(한국 장애인 재활협회 부회장)은 지난 세기까지는 서구에서도 장애인을 보는 최상의 시선이 자비심이나 연민이었다고 말합니다. 불쌍하니 도와야 한다는 거지요. 그러다가 20세기 후반부터 장애인의 삶을 '인권'의 차원에서 바라보는 시각이 형성됐다고 합니다. 장애인은 불쌍한 존재가 아니라 비장애인과 똑같이 고유한 자기 삶을 사는 시민이라는 겁니다. 당연히 그들의 삶은 남의 연민에 의존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권리로서 존중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인권을 넘어 국가 책임의 차원으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장애인들이, 장애인의 가족들이 그리고 장애인을 돌보는 선생님들이 인간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국가의 책임이고 국가의 중요한 존재이유라는 겁니다. 국가는 장애인들이 시민으로서, 국민으로서 불편하지 않게 살아갈 수 있도록, 장애인 가족들이나 장애인을 돌보는 선생님들이 너무 많은 부담에 지치지 않도록 책임져야 하는 겁니다. 우린 아직 멀었지만 희망은 있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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