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갤러리 탐방]리안갤러리 이창남 개인전 (29일까지)

이창남 작
이창남 작

내가 살고 있는 집에는 살림살이가 없는 축에 낀다. 그리고 오래된 물건도 그다지 없다. 내가 잘하는 차트 매기기를 하자('쓸데없는 곳에 머리쓰기 베스트' 같은 차트가 있다면 상위권에 오를 만하지만). 우리 집에서 쓰는 가장 오래된 물건 베스트5가 어떨까. 아, 책은 제외. 1위는 누군지도 모를 친척에게 어머니를 통해 들여온 쌀뒤주. 2위는 역시 어머니가 나를 배 속에 가진 기념으로 아버지로부터 선물받았다는 이바하 피아노. 3위는 어머니와 외할머니가 곧잘 쓰던 우윳빛 머그컵. 4위와 5위도 어머니... 따지고 보니 난 오래된 물건을 안 쓴다. 찾아보면 몇 개 있겠지만, 모르겠다. 내가 물건에 그렇게 애착을 두지 않는다는 사실은 나 스스로도 뜻밖이다. 이런 내가 서양화가 이창남의 그림을 본다. 그렇다면 나는 이 그림이 좋을까, 싫을까.

이 사람에게는 새로운 뭔가에 대한 호기심이 도통 없는 건지, 그림 속엔 온갖 오래된 방안의 물건이 묘사된다. 내가 보기에 그는 과슈 물감을 회화에 쓰는 이유가 뭔지 알고 쓰는 흔치 않은 화가다. 전시 제목 앞부분이 'On The Wall'이니까 벽에 붙어있는 가구와 그 속에 포함된 것들, 그리고 벽에 뚫린 창밖 풍경까지가 딱 관찰 범위라 할 수 있겠다. 제목 뒷부분이 'Drawing & Painting'인데, 설명을 들어본즉 (밑그림 식으로 그리는)드로잉과 (물감을 붓질해 입히는)페인팅을 같은 급에 놓고 취급한다는 뜻이 담겨있다. 다 좋은데, 보통 이럴 땐 두 가지 그림 값도 같을지 궁금하긴 하다. 뭐 그런 의미보다 재빠른 손을 필요로 하는 이런 난도의 그림조차 별로 어려울 게 없다는 자부심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적어도 그림에 관한 태도가 곧고 순수한 구상 계열의 많은 화가들이 절대적 미를 세워놓고 거기에 전통의 격으로 접근하는 방법과 달리, 이창남은 보통 그림의 격에서 탈락한 후줄근함에 빛을 비춘다. 그는 자기 그림이 탄생하는 그곳의 신산함을 작품 소재로 빨아들이는 리사이클링 과정을 작업에 도입한 셈이다. 분위기 있는 장소를 찾아다니는 무리에게 일절 장식이 배제된 커피집들도 환영받지만, 낡고 허름한 가정집 벽을 터서 원래부터 거기 있었을 법한 가재도구를 둔 채 이사를 가다 만 것 같은 곳에서 커피를 파는 가게도 인기다. 이렇게 뜬금없는 대중의 감성구조에 관한 놀라운 통찰을 이 작가와 화랑은 가지고 있다.

윤규홍 (갤러리분도 아트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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