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이 힘겨운 연말을 보내고 있다. 지난 7월부터 도입된 근로시간 단축과 가파른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경영 환경이 더 나빠졌기 때문이다.
300인 이상 사업장의 주 52시간 근무제 처벌 유예가 올해로 끝나고 내년 초부터 시간당 최저임금이 올해보다 10.9%가 오른 8천350원이 적용돼 중소업체들과 영세상인들은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중견 업체들은 변화하는 노동환경에 어렵게 적응하고 있고, 소규모 제조업과 자영업은 늘어나는 비용부담에 내년도 사업이 막막한 상황이다.
◆지역 제조업체의 힘겨운 적응
지역 제조업체들은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등 새로운 노동환경에 힘겹게 적응하고 있다. 경기침체로 경영여건이 어렵지만 유연 근무와 탄력근로제를 도입하고, 기본급을 올리거나 상여금이나 수당 중 일부를 기본 급여에 포함하는 등 임금 체계를 바꾸고 있다.
직원이 1천명 넘는 자동차부품업체 A사는 지난 6월 말부터 공장에서 근무하는 인원을 200명에서 240명 수준으로 늘렸다. 1일 2교대 체제로 운영되던 공장을 3교대로 전환했다. 신청을 받아 오후 9시까지 이어지던 잔업도 없앴다. 주말 근무를 포함하더라도 근로자가 일할 수 있는 최대 시간을 48시간 이하로 낮췄다.
자연스레 인건비 부담이 늘었다. A사 관계자는 "인원이 늘어난 만큼 개인 근로시간은 줄었지만, 식대와 교통비 등 각종 수당을 고려하면 매달 직원 한 명에 지급하는 임금은 큰 변화가 없다"며 "생산량은 그대로인데 인건비만 늘어나 부담"이라고 말했다.
영세한 업체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임금을 올리고 있다. 달성산업단지의 비닐제조업체 B사는 종업원이 11명(외국인 노동자 4명 포함)이다. 내년 최저임금 인상의 여파로, 전체 비용의 20% 초반 수준인 인건비 비중이 내년에는 30%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저임금 인상을 적용받는 하위직원은 물론 나머지 직원들도 월급을 올려야 해서다.
B사 대표는 "식대 등 수당을 그대로 둔 채 기본급을 법에 맞도록 올려야 한다. 문제는 호봉이 낮은 직원이 더 많은 임금을 받는 역전현상을 막으려면 호봉당 기본 금액을 일률적으로 올려야 한다"고 하소연했다. 이 대표는 "정부 지원은 실효성이 없다. 지원 대상이 최저임금을 적용하는 몇몇 직원에게만 해당되고 나머지는 고스란히 업체의 부담이다"고 하소연했다.
◆막막한 영세 소상공인들
영세한 소상공인들은 더욱 막막한 상황이다. 올해 오른 최저임금에 힘겹게 적응해왔는데, 내년에 또 최저임금을 10.9% 인상하기 때문이다.
달성군의 한 식당은 최근 3명이었던 종업원을 한 명으로 줄이고, 손님이 뜸한 오후 2~4시 사이 휴식시간 임금을 지급하지 않기로 했다. 부족한 일손은 가족이 대체하고 있다.
식당 주인 정모(57) 씨는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은 주 52시간 근무제도 도입됐고 '워라밸'이라는 말도 나오는데 자영업자들은 오히려 일하는 시간이 늘었다. 하루 12시간 이상 일하지 않으면 먹고 살길이 막막하다"고 한숨을 쉬었다.
동구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이모(30) 씨는 매달 130만원을 받는 조건으로 매장을 다른 사람에게 넘겼다. 내년에 최저임금이 오르면 운영하기 어렵다고 판단해서다. 이 씨는 "평일 주말 구분 없이 매일 12시간씩 일해도 인건비와 프랜차이즈 가맹비, 임대료 등을 내고 나면 손에 쥐는 돈은 200만원이 고작이다. 지난해보다 50만원 가까이 줄어든 금액"이라며 "차라리 매장을 넘기고 다른 일을 하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식당들은 종업원 근무형태를 일당을 주는 임시직으로 바꾸고 있다. 월급을 주는 것이 아니라 필요할 때 근무시키는 방식이다.
서구의 한 식당 대표는 "주중과 주말, 계절별로 손님 수가 천차만별이어서 상근 직원을 5명에서 2명으로 줄이고, 필요할 때만 일당 10만~15만원을 주고 고용을 한다"며 "정직원을 쓰면 월급 이외에도 고용보험과 건강보험 등 각종 비용부담도 커져 임시직으로 교체했다"고 했다.
최종수 한국외식업중앙회 대구시지회 회장은 "이미 결정된 최저임금을 바꿀 수 없다면 카드수수료, 임대료 등 다른 부담이라도 줄여줘야 한다. 서울시 제로페이 같은 정책을 지역도 적극적으로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실효성 있는 대책과 제도적 보완 필요
이 같은 현실 때문에 이달 말 처벌 유예기간이 끝나는 주 52시간 근무제에 대한 보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탄력근로제를 적용하는 단위 기간을 더 늘리자는 것이 골자이다. 아울러 최저임금도 적용 업종을 구분하자는 주장도 있다. 임금 인상 부담이 큰 영세 업종을 배려하자는 것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최근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을 3개월에서 최대 1년으로 확대하고 최저임금을 업종별로 구분'적용해야 한다는 경영계 종합 의견서를 국회 관련 상임위에 제출했다. 특히 탄력근로제 도입 요건을 완화하고, 정산 시간을 1개월에서 1년으로 확대하고, 한시적 인가 연장근로의 경우 사유를 폭넓게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저임금의 경우 업종별 구분적용 이외에도 연령별, 지역별 구분적용도 도입할 것을 요구했다.
특히 제조업과 건설업, 운수업 등 특정 기간에 생산이 몰리고 업무가 집중되는 업종의 경우 근로시간 단축에도 생산성을 유지할 수 있는 탄력근로제 확대가 필요하다는 것.
이에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최근 단위 기간을 확대하는 내용의 탄력근로제 개선 방안을 논의했지만, 연내처리가 무산됐다. 내년 1월까지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논의 결과를 지켜본 뒤 2월 임시국회에서 다시 추진하기로 한 상황이다.
대구상공회의소 관계자는 "근무형태가 특수한 기업 내 부설연구소는 단위 기간 3개월인 현행 탄력근로제를 적용할 경우 운영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며 "반드시 받아야 하는 법정 교육이 근무시간에 포함된 탓에 생산 시간 부족 등 기업 현장에서 차질을 빚을 수 있어서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조임호 전국중소기업'중소상공인협회 회장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에 대한 지원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카드수수료 인하뿐만 아니라 임대료 부담 완화, 업종과 지역별 최저임금 차등 적용 등도 추진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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