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반성 2018

김수정 대구오페라하우스 교육홍보팀장

김수정 대구오페라하우스 교육홍보팀장
김수정 대구오페라하우스 교육홍보팀장

오래전 어느 날 우연히, 참 재미있는 시를 한 편 읽고는 아예 통째로 외어 두었다. '술에 취하여 수첩에다가 뭐라고 썼는데, 술이 깨니까 알아볼 수가 없었고(괴발개발 필체), 술 몇 병을 마신 다음에(취기 충만하여) 봤더니, '다시는 술 마시지 말자'고 써 있었다'는 내용의 시다. 이 시를 외우고 보니 제법 요긴했다. 어쩌다 가진 술자리에서 은근히 암송해주면, 누구든 자기 얘기인양 공감하고 즐거워했기 때문이다.

시의 제목은 '반성 16'이다. 1980년대, 김영승 시인이 『반성』이라는 이름으로 낸 첫 시집에 수록돼 있었는데, 이후로도 '반성' 연작은 이어졌다. 최근에는 '반성 827'도 읽은 적이 있다. 앞으로도 그의 반성은 계속될지 모르겠다. 허물없이 지내는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소박한 이웃들의 모습에서, 심지어 키우는 개의 행동을 통해서 끊임없이 삶에 대한 성찰을 이어가기 때문이다. 그의 시가 사랑받는 것은 '공감'의 힘이라고 느낀다. 눈꼽 만큼도 반성할 게 없는 사람, 한번도 되돌아보지 않는 사람이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의 시는 누가 읽어도 자기 식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시인이 그랬던 것처럼 가릴 것도 꾸밀 것도 없이 진솔하게 말이다.

오랫동안 사용했던 물건들을 통해서도,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며 반성에 이르기도 한다. 한 TV프로그램에서, 한 연예인이 수십년 동안 썼던 낡은 지갑을 잃어버리고 그 지갑과 함께 한 긴 시간을 돌아보는 이야기를 했다. 마치 '고해'처럼 들렸다. 지금 대구오페라하우스 무대에 오르는 푸치니 걸작 오페라 '라보엠'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다. 4막에서 철학자 콜리네가 죽어가는 미미를 위해 한 벌 뿐인 외투를 팔러가면서 부르는 '외투의 노래'라는 아리아. 오랫동안 동고동락했던 외투를 벗으며, "낡은 외투야, 그동안 감사했다. 부자와 권력자에게 등을 굽히지 않았고, 동굴 같은 주머니에 수많은 철학자와 시인의 책을 넣게 해주었던 너에게 작별을 알린다"며 지난 시간을 돌아보는 내용을 울림이 깊은 베이스의 음성으로 들을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반성을 하며 산다. 필자 역시 감히 시(詩)를 운운할 수는 없지만, 빈 종이에 메모도 하고, 때로는 반성문 같은 일기도 쓴다. 이제 일주일만 있으면 새해가 시작된다. 책상 위에는 받아둔 새 달력과 다이어리가 있는데, '2019'라는 숫자가 영 어색하다. 남은 며칠이 쏜살처럼 사라지기 전에, 만사 제쳐놓고 지나온 한 해를 되돌아보는 반성의 시간을 가져보려 한다. '반성 2018'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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