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예천군의회 사태와 정당개혁의 필요성

배지훈 대구 달서구의원

배지훈 대구 달서구의회 의원
배지훈 대구 달서구의회 의원

예천군의회의 해외연수 사태의 파장이 이만저만 아니다. 정치인뿐만 아니라 공무원의 해외연수까지 금지하자는 주장이 나온다. 나아가 지방의회 폐지론에 이르기까지 분노에 가득 찬 다양한 여론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번 사태와 관련하여 정당개혁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의식 없이 피상적으로 정치혐오와 반정치의 감정적 결과물만 내놓는다면 지방자치는 물론 지방분권 실현에도 하등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번 사태를 일으킨 가장 큰 원인 제공자는 해당 의원을 공천한 정당이다. 공천권을 쥔 무소불위의 제왕적 당협위원장 체제하에서 인성과 자질에 상관없이 해당 지역의 당협위원장에게 가장 충성도가 높은 인물이 밀실에서 형식적인 심사를 거쳐 공천된 것이 문제의 발단이다. 정당의 공천과정이 투명하고 민주적이었다면 인성과 자질, 의정활동 능력에 문제가 있는 인물들은 아예 공천을 받기가 어려웠을 것이고 의회 입성도 힘들었을 것이다.

당협위원장에 대한 어떤 견제도 작동하지 않는 이러한 비민주적 공천 시스템에서는 자질과 능력을 갖춘 인물이 공천되기도 어렵고 나아가 지방의회, 지방자치까지 망가뜨릴 수 있다. 지방의회 의원은 해당 지역구 국회의원의 가방 심부름꾼이라는 말은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자치와 분권은 관계에 대한 독립과 주체적 사고를 바탕으로 한다. 이런 식의 수직적으로 예속된 관계에서는 오히려 자치와 분권에 역행하는 인물만 공천될 확률이 높다. 공천 시스템의 개혁 없이 해외연수만 없앤다고 과연 지방자치가 발전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현 상황에선 이런 일이 앞으로 또 발생하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다.

정당의 정치인뿐만 아니라 남 앞에서 일을 하는 모든 사람들은 권한과 권리를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권리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법이 부여한 힘이지만 권한은 오로지 남을 위해서만 쓰도록 법이 보장한 힘이다. 전직 대통령들의 불행도 따지고 보면 권한과 권리를 혼동해서 처신한 결과이기도 하다. 무릇 세상의 모든 정치인들은 남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들이라 권한만 있는 것이지 권리는 없다. 만약 대통령이나 정치인에게 권리가 주어진 사회라면 그건 왕조국가나 독재국가와 다름 없다.

공천권도 마찬가지다. 공천권이 당원의 권리가 아닌 각 정당들의 당협위원장의 권리라고 인식하는 당 구조에서는 주민을 위해 봉사하는 인물보다는 당협위원장 자신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인물이 공천될 가능성이 많다.

이번 사태에 대해 충격을 받은 예천군민들이 이사를 가고 싶다고 한다. 하지만 눈앞의 정치를 회피해서는 오히려 정치가 타락할 수 있다. 만약 지난 지방선거에서 예천군민들이 예천군의회의 구성을 좀 더 다양하게 했더라면 의회 내부적으로 각 정당들 간 견제와 감시도 있었을 것이고 이번과 같은 사태는 미연에 방지할 수도 있었다.

해외연수 실시 여부에 매몰되면 정치개혁의 본질을 가릴 수 있다. 똑같은 물도 뱀이 먹으면 독이 되지만 젖소가 먹으면 우유가 된다. 의원 연수도 제대로 된 인물만 공천한다면 얼마든지 좋은 방향으로 쓰일 수 있는 문제다.

실제로 달서구의회는 지난해 독일의 환경정책들을 보고 배워 온 덕분에 성서 바이오SRF 열병합발전소 문제를 풀어 가는 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

이번 사태의 재발 방지와 지방자치의 근본적인 발전을 위해서라도 각 당은 공정하고 투명한 공천 절차부터 마련해야 한다. 아울러 지방분권의 실현을 위해서라도 각 당은 상향식의 민주적인 정당 시스템으로 정당개혁부터 해야 한다. 정말 주민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인물이 공천된다면 지방자치는 지금보다 훨씬 더 발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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