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곳곳의 지명을 통해 그 지방의 역사와 사람살이를 풀어내는 책이다. 땅의 이름이 그 지역의 특수한 환경과 역사를 내포하는 경우가 많다. 이 책은 지명을 통해 그 지역의 흥망과 영광, 비극의 드라마를 보여준다.
◇ 위치와 땅 모양 담은 이름, 그 지역 운명
동유럽 중앙부에 자리한 폴란드의 국명은 옛 슬라브어로 '평평한 대지'라는 뜻이다. 평화로울 때에는 평평한 대지가 농경에 적합해 풍요를 은유하지만, 격변기에는 침략을 쉽게 당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폴란드는 이러한 지정학적인 환경 때문에 두 차례나 주변 강대국의 식민지가 된 역사를 갖고 있다.
블라디보스토크는 러시아 동부 끝에 위치한 항만도시이며, 시베리아 철도의 동쪽 기점이다. 러시아어 블라디보스토크에는 '동방을 정복하라'는 뜻이 있다. 1903년 시베리아 철도가 개통되고, 이곳은 극동 진출을 위한 전략적 요충지가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소비에트연방 시대에는 이곳에 태평양함대 사령부가 설치되어 있었고, 지금은 러시아의 아시아 교역거점이다.
◇ 환경 격변 때 이름에 변화, 역사 보여줘
지명은 한번 정해지면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환경이 급변하거나, 다른 문화가 유입되면 새로운 지명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지명은 역사를 담은 그릇이 된다.
1905년과 1917년 일어난 러시아 혁명은 제정을 무너뜨리고 사회주의 국가를 탄생시켰다. 소비에트 정권은 제정시대를 잊게 하기 위한 방책으로 도시와 마을 이름을 대거 바꾸었다. 그러나 100년도 지나지 않아 소비에트연방이 해체되자 이번에는 과거의 이름으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러시아 표트르 대제는 스웨덴으로부터 빼앗은 영토 중 네바강 하구에 핀란드만을 접한 곳에 1703년 서구적인 대도시를 건설했고, 자기 이름의 어원인 베드로(성서의 열두 사도 중 한 사람)에서 따와 '페테르(Peter)'로 지었다. 여기에 상트(Sankt=성스러운)와 부르크(burg=도시)를 붙여 '상트페테르부르크(성 베드로의 도시)'라고 명명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독일어인데, 이는 당시 러시아가 독일을 근대화의 본보기로 삼았기 때문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러시아 혁명 후인 1914년 '페트로그라드'와 '레닌그라드'로 바뀌었다가 소련 해체 후 1991년 다시 '상트페테르부르크'가 되었다.
◇ 아메리카는 '아메리쿠스의 나라'
콜럼부스가 아메리카를 발견했을 때, 그들 일행은 이곳이 신대륙이라는 사실을 몰랐다. 콜럼부스는 자신이 도착한 섬들이 아시아 대륙의 동쪽 끝에 있는 섬들이라고 생각했고, '인도제도'라고 불렀다.
콜럼부스보다 뒤에 신대륙을 발견한 이탈리아 출신 항해가 아메리고 베스푸치는 자신이 아메리카 대륙에 처음 도착한 것이 1497년, 즉 콜럼부스보다 1년 먼저라고 기록했다. 게다가 그는 신대륙의 풍토와 사람들의 생활상을 라틴어로 뛰어나게 묘사했다. 덕분에 독일인 지리학자 한 사람이 1507년 책을 쓰면서 신대륙을 발견한 사람이 '아메리고 베스푸치'라고 기록했다.
'아메리고'를 라틴어로 표기하면 '아메리쿠스(Americus)'가 되고, 그 교수는 신대륙을 '아메리쿠스의 나라', 즉 '아메리카'로 부르자고 제안했다. 나중에 이 교수는 자신이 제안한 이름이 잘못임을 깨닫고, 이름을 바꾸자고 주장했지만, 이미 유럽 전역에서 '아메리카'라는 이름이 자리를 굳힌 다음이었다.
◇ 신화나 피부색이 지명이 되기도
항해술이 발달했던 페니키아인들은 지중해 연안의 여러 항구를 돌아다녔다. 그러던 중 에게해에 들어섰고, 에게해 서쪽 지방을 에레브(ereb), 동쪽지방을 아수(assu)라고 불렀다. 당시에는 이 말이 지중해 연안의 일부 지역을 일컫는 말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에레브는 유럽으로, 아수는 아시아로 바뀌었다.
유럽인들은 아프리카를 '암흑대륙'이라고 불렀다. 사막과 정글이 무성한 미지의 세계였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흑인이었기 때문이다. 이집트 남쪽에 있는 국가 '수단'은 아랍어로 '흑인'이라는 뜻이고, 에티오피아는 그리스어로 '그을린 얼굴'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런가하면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등 서남아시아의 여러 국가 이름에 붙어 있는 '스탄'은 '사람들의 나라'라는 뜻이 담긴 페르시아계 및 터키계 특유의 지명 접미사이다.
◇ 국명과 수도명에 얽힌 역사 정리
부록편에서는 세계 각국의 국명과 수도명에 얽힌 5,000년의 역사를 정리하고 있다. 가령 '브라질 연방공화국'의 '브라질'은 포르투갈어 'brasa'로 '붉은색'이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1500년 포르투갈 함대가 인도를 향해 가던 중 브라질에 상륙했는데, 그곳이 마침 붉은색 염료의 재료인 브라질 다목 숲이었다. 그래서 '붉은색'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다는 것이다.
일본의 도쿄(東京)는 서쪽의 교토(京都)와 상대해 동쪽에 있다는 의미로 메이지시대에 지은 이름이다. 메이지 시대는 1868년 1월 3일 메이지 정부가 수립된 때부터 1912년 7월 30일 메이지 천황이 죽을 때까지 44년간을 말한다. 부록을 일별하는 것만으로도 각 나라의 역사를 아주 간단하게마나 훑어볼 수 있다.
책은 총 9장과 부록으로 구성돼 있다. 1장 고대 지중해와 지명의 탄생, 2장 지명을 바꾼 게르만족의 대이동, 3장 동유럽 일대는 슬라브족의 고향, 4장 대항해 시대가 큰 세상을 열다, 5장 몽골제국과 유라시아, 6장 유대인의 이산과 아랍인의 진격, 7장 신세계 아메리카의 지명은 어떻게 만들었나?, 8장 '검은 대륙' 아프리카의 전설, 9장 '자연'이 낳은 지명의 역사, 부록=국명과 수도명에 얽힌 5,000년 인류의 역사. 400쪽, 1만6천원.
▷21세기 연구회
역사학, 문화인류학, 고고학, 종교학, 생활문화사학 연구자 9명이 설립한 일본의 국제문화 연구회이다. 국가의 경계를 넘어 지구촌의 공통 과제를 테마로 세계 시민의 자각과 시각을 기르자는 게 이 모임의 목표이다.
지은 책으로 '지도로 읽는다 한눈에 꿰뚫는 세계지명 도감' '지도로 읽는다 한눈에 꿰뚫는 세계민족 도감' '이슬람의 세계지도' '상식의 세계지도' '색채의 세계지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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