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바뀌고 다시 설이 다가왔다. 어린 시절의 설렘 대신 자식, 부모 된 도리로 설을 맞는다.
나이 탓일까. 명절을 맞을 때마다 삶에 대한 고뇌가 깊어진다. 가족공동체 사회에서 미풍양속으로 이어져 온 명절의 의미와 가치가 급변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과는 달라졌다는 것을 오래전부터 되뇌고 있었지만, 변화는 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추석 연휴 때 일이다. 심심했다. 할 일이 없었다. 이래서 명절에 해외여행을 가는 것인가.
예전, 명절에 낚시하거나 가게 문을 열고 장사하는 사람, 공원을 배회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남을 비아냥거렸던 일이 현실이 됐다.
추석 전, 장모는 대놓고 딸들에게 "친정에 오지 않아도 괜찮다"고 했단다. 이번 설에도 마찬가지다. 하나 있는 처남은 빠듯한 외국살이에 명절도 이제 안중에 없다.
명절에 처가에 가지 않으면 할 일의 절반이 줄어든다. 좋고 싫음을 떠나 당연시한 처가 방문이 없어진 건 (말로는 귀찮은데 잘됐다고 했지만) 상실감으로 돌아왔다.
우리 집도 예전과는 많이 변했다. 조상 제사 모시고 고향 집 근처 선산에 성묘하는 것까지는 이어지고 있지만, 분위기는 사뭇 달라졌다.
꼬마였을 때 추억이다. 집성촌에서 촌수가 높았기에 어른들로부터 인사받는 게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자주 못 본 어른들이 동네 선산에 성묘한 뒤 우리 집을 찾아 아저씨뻘인 나에게 공손했던 모습은 다른 세상의 얘기로 남을 것 같다.
우리 세대까지는 그래도 몸에 밴 의무감으로 제사, 성묘까지는 이어질 듯싶다. 하지만 후손들에게 이를 기대하려면 대책이 필요하다.
이 시점에서 보면 '제사답'은 미래를 내다본 조상의 지혜로 보인다. 대를 잇는 장손에게 제사를 모시는 용도로 일정한 논밭을 물려줬기에 최소한의 미풍양속이 살아 있는 듯싶다.
그러나 이웃 동네를 오가며 일가들이 지낸 제사는 6촌, 4촌 형제로 참가 범위가 좁혀졌고, 이제 가족 행사로 진행되고 있다.
주위를 들여다보면 명절에 제사를 지내지 않거나 아예 가족들이 모이지 않는 집이 꽤 많다. 급속히 이뤄진 산업화로 돈이 세상을 지배하는 수단이 되면서, 이로 인한 가족공동체 해체는 가장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그래도 역과 터미널에 귀성 인파가 붐비는 아직은 조상의 얼을 잇고 미풍양속을 되살릴 희망이 있다.
자식 세대에 제사 등 조상 모시는 일을 강요하는 게 맞는 일인지 회의감이 들 때도 있지만 인간의 도리를 지키고 삶의 가치를 높이려면 전통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제사답'을 이을만한 뭔가를 찾아보자. 재산이 있다면 어떻게 물려줄 것인가를 고민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우리 아버지,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자식에게 아낌없이 내어주려면 용기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가족 간에 얽힌 사건·사고가 넘쳐나는 혼탁한 세상이다.
올 설에는 가족들이 모여 가족공동체를 되살리는 지혜를 찾아보자. 가족공동체는 오랜 기간 효를 바탕으로 유지돼왔다.
친구 가족의 사례다. 부인과 딸, 아들을 둔 친구는 명절은 물론 수시로 가족이 모여 식사하거나 여행을 간다고 한다. 아들, 딸이 멀리 떨어져 살기에 불편하고 돈이 들지만 가족이란 이유로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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