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1인 다역 멀티맨 "감초 역할로 극 재미 높여주죠"

50대 멀티맨 연극 배우 김재권 1인 6역 맹활약

연극
연극 '몽키열전'에서 열연중인 배우 김재권. 대구시립극단 제공
연극
연극 '벚나무동산'에서 열연중인 배우 김재권(우측). 대구시립극단 제공

연극 공연에 멀티맨 등장이 늘고 있다. 멀티맨은 1인 다역 즉, 배우 한 명이 여러 역할을 수행하는 것을 말한다. 1인이 적게는 3역에서 많게는 22역까지 맡기도 한다. 멀티맨은 보통 3~7명 배우가 등장하는 극에서, 비극보다 코믹 극에서 주로 활용된다. 멀티맨은 주연보다 조연으로 나와 감초 역할을 하며 사건의 진행을 매개하고 극의 재미를 높여준다.

사실 멀티맨 활용의 근본적 이유는 제작비 절감에 있다. 연극 한편을 만들기 위해 최소 1천만원 이상 들지만 소극장의 영세성을 감안하면 그만큼 배우 캐스팅 비용을 줄일 수 있다. 대구시립극단 단원인 멀티맨 김재권(50) 씨를 통해 맛깔스런 멀티맨의 속살을 살펴봤다.

"5년전 출연한 연극 '개장수'에서 1인 6역을 맡았지요. 늙은 이발사, 아줌마, 대학생, 술집 기생, 깡패 등 나이, 성별을 따지지 않고 무대에 오르내렸죠. 특히 남장에서 여장으로 변신하기가 가장 어려웠죠. 짧은 시간에 가발을 쓰고 립스틱을 바르고 신발과 의상을 갈아입어야 하거든요. 처음엔 지퍼 달린 원피스 경우 혼자 지퍼를 못 올려 무대에 나가 애드립으로 관객에게 지퍼를 올려달라고 한 적도 있어요. 지금은 혼자 척척 지퍼를 잘 올리지만요. 하하"

그는 1995년 '30일간의 야유회'로 데뷔한 후 '다시라기' 작품으로 2002년 제19회 대구연극제 우수연기상, 2008년 '오장군의 발톱' 작품에서 사령관으로 출연해 제25회 대구연극제 최우수연기상, 2013년 '개장수' 작품에서 멀티맨으로 출연해 제11회 김천국제가족연극제 우수연기상을 받았다. 그외 주요 출연작으로 '말괄량이 길들이기' '갈매기' '벚나무 동산' '몽키열전' '레 미제라블' 등이 있다.

"멀티맨에서 중요한 것은 '멀(뭘)' 해도 '티' 안 나게 잘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유치한 말장난 같지만 멀티맨을 해본 배우들은 유치하게만 여기진 않아요. 의상 몇 번 갈아입고 목소리만 조금 달리 한다고 멀티맨이라 할 수 없으니까요. 가장 어려운 건 공연 중 관객의 반응이죠. 폭소가 터진다거나 반대로 반응이 거의 없을 때 자칫 거기에 휩쓸리면 캐릭터를 놓치게 되거든요. 그렇게 되면 '뭘(멀)' 해도 '티' 나는 배우로 전락하고 만다는 거죠."

그는 억양이 튀는 대구말씨로 맛깔스럽게 양념을 잘 뿌린다. 아재 개그로 관객을 휘어잡는 애드립의 선수다. 무대 첫 등장 때부터 끝까지 한 관객을 집중 공략한다. 깡패 역에선 삥을 잘 뜯고 기생 역에선 관객 무릅에 앉기도 한다. 경찰역에선 수갑을 거꾸로 채워 폭소를 자아낸다. 주어진 캐릭터를 살짝 비트는 코믹한 연기력이 특기다. 그리고 극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횡간의 맛을 잘 찾아내는 능력도 갖고 있다.

"10년 전 공연했던 '오 마이 갓! 파더!' 작품에서 1인 3역을 맡았죠. 그 중 첫 번째인 판사역을 위해 대구법원 공개법정에 보름 정도 들락거렸죠. 판사 역의 힌트를 구하기 위해서죠. 어느 날 판사 한 분이 경상도 사투리로 선고하는 것을 듣고 큰 깨달음을 얻었죠. 멀티맨은 각 역할의 직업에 배어 있는 오랜 고정관념을 깨고 색다르게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죠."

연극
연극 '말괄량이 김들이기'에 출연한 배우 김재권. 대구시립극단 제공

멀티맨은 관객이 볼 수 없는 무대 뒤에서 전쟁을 치른다고 한다. 변장할 신발, 가발, 화장품, 의상, 소품만 수십가지. 의상은 배우가 직접 갈아입어야 한다. 무대에서 퇴장하고 30초 안에 변장해 무대에 나가는 경우도 있다. 시간 단축을 위해 의상을 이중으로 껴입기도 한다. 바닥에는 의상이 어지럽게 놓여 있지만 배우의 등장 동선을 따라 질서가 있다는 것. 배우들끼리 남의 의상을 건드리지 않는 게 하나의 룰이다. 또 멀티맨은 많은 대본도 소화해야 한다. 그냥 시 암송하 듯 대사를 외우면 모두 외울 수 없다. 극의 전개과정, 캐릭터 속성을 알게 되면 자연스럽게 대사를 익힐 수 있다는 것.

대구 연극계에는 연기력이 뛰어난 멀티맨은 아직 많지 않다. 전체 배우 400여 명 가운데 50대 나이로는 배우 김재권, 박상희 씨 등이 꼽히고 젊은층에선 배우 이창근 씨 등 2, 3명에 불과하다. 서울 대학로에선 멀티맨이 출연하는 공연이 많아지고 있다. 뮤지컬 '김종욱 찾기'에서 배우 황재훈 씨는 무려 1인 22역을 소화해 화제를 모았다. 연극 '날 보러와요' '살인의 추억'에서 배우 유태호 씨, 연극 '작업의 정석'에서 배우 윤미소 씨, 뮤지컬 '비커밍맘2'에서 배우 임태양 씨도 다역을 맡았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