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 전체 사립유치원의 20%가 4일 개학 연기를 강행하면서, 주말 동안 마음을 졸였던 학부모들의 시름이 더해지고 있다. 경북의 일부 유치원은 자체돌봄조차 운영하지 않는 데다 언제까지 개학을 미룰지도 정하지 않아 그야말로 '보육 대란'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돌봄 부재' 경북 학부모 당혹
개학 연기를 결정한 대구의 사립유치원 50곳은 4일 모두 자체돌봄을 운영한다. 정상적으로 등원하되, 수업은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지난 2일 저녁 강은희 대구시교육감과 대구사립유치원연합회 임원진이 긴급 협의회를 열었고, 이 자리에서 학부모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돌봄은 정상 운영하기로 합의했다.
때문에 개학 연기시 아이 맡길 곳을 우려하던 대구지역 학부모들은 그나마 한숨을 돌린 모양새다.
반면 경북의 경우 개학 연기 유치원들이 자체돌봄 서비스를 운영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맞벌이 가정은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개학 연기 유치원 41곳 중 자체돌봄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밝힌 곳은 2곳뿐이다.
이들 유치원은 입학 예정 학부모들에게 개학 연기에 대한 이유 등을 문자로 보내 설득하고 있지만, 학부모들의 불만을 잠재우기엔 역부족인 상황이다.
일부 학부모는 자녀의 입학을 취소하고 다시 다른 어린이집에 보내거나 공립유치원을 알아보는 등 사립유치원에 대한 불신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학부모들의 불만은 교육 당국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포항에 사는 김모(37) 씨는 "정부가 발표한 개학 연기 유치원 수가 실제보다 터무니없이 적었다. 포항만 해도 20여 곳이라 했는데 실제로는 35곳이었다"며 "이건 교육 당국과 사립유치원 간에 소통이 전혀 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상황이 이런데 어떻게 교육 당국을 믿을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경북도교육청 관계자는 "애초 공문을 통해 개학 연기 유치원을 파악한 뒤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렸고, 이후 연락을 받은 유치원을 명단에 추가했다"고 밝히며 수습에 나섰지만, 학부모들의 불신은 숙지지 않고 있다.
더욱이 경북도교육청은 경북이 다른 지역에 비해 사립유치원의 개학 연기 참여도가 높은 이유에 대해 파악조차 못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포항교육지원청 관계자는 "우리도 이유를 알고 싶어 유치원에 계속 연락을 취하고 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아 답답한 상황"이라며 "어떻게든 대화를 하려고 시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경북도교육청은 문제 해결을 위해 공립유치원·어린이집·여성가족부 산하 긴급 아이 돌봄 서비스 시설 등을 임시 돌봄 기관으로 정해 신청자를 받고 있지만, 모든 수요를 감당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경산의 한 학부모는 "집 인근에는 다른 유치원이 없다. 아이를 어디로 보내야 할지 막막하다"며 "사립유치원이 개인 욕심에 아이들을 볼모로 개학을 하지 않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대구시교육청과 경북도교육청은 개학 연기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비상근무체제에 돌입하는 한편 개학 연기 유치원에 대해선 엄정 대응하기로 했다. 4일 개학을 연기한 유치원에 시정명령을 내리고, 5일에도 정상 운영하지 않을 경우 고발 등 법적 조치를 할 예정이다.
경북도교육청 관계자는 "유치원 입학일 연기는 유치원운영위원회의 자문을 거쳐야 하며, 이를 지키지 않고 연기하는 것은 유아교육법 등 관계법상 불법"이라며 "학부모와 유아를 볼모로 하는 개학 연기 유치원에 대해서는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아이 볼모로 기싸움" 여론 싸늘
유치원 개학 연기에 대한 여론은 싸늘하다. 교육부와 유치원 단체의 '기싸움'에 학부모와 아이들만 피해를 입고 있다는 비난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포항 A유치원 입학 예정 학부모는 "개학일에 맞춰 모든 일정을 다 준비해놓고 등원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상황에서 이런 돌발적인 행동으로 피해를 준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어떤 이유에서건 아이들을 볼모로 이런 일을 벌였다는 점은 용서받기 힘들 것"이라고 했다.
이날 경기 용인에서는 학부모 100여명이 수지구청 앞에서 집회를 열고 "아이들을 볼모로 하는 사립유치원들은 각성하라"며 "유아교육 농단을 즉각 중단하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전국유치원학부모비상대책위원회 역시 "우리는 이번 일을 아이들의 학습권을 침해하고 학부모들의 삶을 파괴하는 유아교육 농단으로 규정한다"며 "만약 개학연기 사태가 장기화한다면 조만간 서울 광화문에 전국 학부모들이 모여 대규모 시위를 벌일 것"이라고 경고했다.
◆"설립허가 취소" "폐원 투쟁"
이같이 유치원 개학 연기라는 초유의 사태가 현실화됐음에도 교육당국과 한유총은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3일 조희연 서울시교육감과 이재정 경기도교육감, 도성훈 인천시교육감은 3일 서울시교육청에서 수도권교육감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유치원 개학연기는 명백한 불법으로 주도한 유치원뿐 아니라 소극적으로 참여한 유치원도 강력히 제재하겠다"며 "개학연기 강행 시 즉각 법에 따른 설립허가 취소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경고했다.
이들은 "비영리 사단법인인 한유총이 국민이 지탄하는 행위를 벌이며 관계장관 파면을 요구하는 것은 비이성적"이라며 "에듀파인과 처음학교로(온라인 입학관리시스템)를 사용하지 않고 개학연기에 가담하는 모든 유치원에 우선 감사를 실시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한유총도 '폐원 투쟁'을 불사하겠다는 등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어 사태는 장기화할 전망이다.
한유총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계속 한유총을 탄압하면 폐원 투쟁으로 나아가겠다"며 "오는 6일까지 폐원 관련 회원 의견을 수렴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사립유치원들의 대화 제의를 교육부가 수락했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됐을 것"이라며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파면을 요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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