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오후 9시 50분에 방송된 EBS1 TV '다큐프라임'에서 우리에게 기억되지 못한 독립운동가 조명하 의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일본에서 유학하던 조명하 의사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1927년 11월 중간 기착지인 타이완의 한 상점에서 일하다가 히로히토 일본 군주의 장인인 일본 육군 대장 구니노미야 구니요시(久邇宮邦彦王)가 타이완에 온다는 정보를 얻었다. 조 의사는 24세이던 1928년 5월14일 타이완 타이중시(臺中市)에서 구니노미야 일본 육군대장을 독을 바른 칼로 공격했다.
일제의 중국침략을 지휘하던 구니노미야는 이후 8개월만에 사망했다. 현장에서 체포된 의사는 29년 10월10일 '황족 살해' 혐의로 일제에 의해 사형이 집행돼 순국했다.
이 사건을 시작으로 일왕을 표적으로 삼는 이봉창 의사 및 윤봉길 의사의 의거가 뒤따랐다. 윤봉길의 의거에 감명을 받은 중국국민당 총통 장제스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원하기 시작해 1943년 카이로회담에서 '노예상태에 놓여 진 한국을 적당한 시기에 해방시킨다'는 내용의 카이로선언을 이끌어냈다.
정부는 그 의기를 기려 1963년에 대한민국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과천서울대공원에 조명하 의사 동상이 있다.
지난해에는 세종대 호사카 유지 교수가 올해 조명하의사 의거 90주년을 맞아 '조명하의사 연구회'의 초대회장으로 취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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