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겨울 우리를 TV 앞에 잡아둔, 대한민국의 불평등 상황을 입시를 통해 비추었던 드라마에서 상징적인 사물을 하나 뽑으라 하면 나는 피라미드를 말할 것 같다. 그 드라마에서 피라미드와 관련된 대사가 생각난다. "피라미드에서 미이라는 요기 요쯤에 있대, 여기에 무게중심이 있대, 그니까 여기가 제일 좋은 자리, 중간이 최고야." 가장 좋은 자리, "요기 요쯤"은 피라미드의 중간 지점이었다.
이 지점을 벨커브(bell curve)라 불리는 정규분포곡선에서 찾으면, 볼록하게 솟은 곡선의 중간 영역 중에서도 가장 가운데, 평균점일 것이다. 벨커브는 이름처럼 좌우대칭이면서 양끝에서 가운데로 올수록 볼록하게 솟은 종 모양의 그래프이다. 수능시험 성적분포, 키나 몸무게 분포 등 많은 것들이 이 곡선을 통해 설명될 수 있다. 이 그래프는 평균에 근접할수록 해당하는 사람이 많음을 보여준다.
일상의 물건은 이 평균점에서 가장 멀리 있는 사람들, 즉 극단치를 배제한 신체 기능 측면에서 '정상인' '일반인'이라 불리는 집단을 기준으로 한다. 전체 인구에서 5~95퍼센타일 범위로, 전체 인구의 약 90%를 차지한다. 사회적 불평등의 심화 속에 전체의 90%를 대변한다고 하니 '참! 괜찮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90%는 배제된 10%의 존재를 암시한다. 이 10%에는 선천적으로 또는 후천적(사고나 질병)으로 장애가 있거나, 또는 노화로 인해 기능이 손상·저하된 사람 등이 포함될 수 있다.
90%를 위한 일상은 10%의 누구에겐 불편함 또는 그 이상이다. 생수병을 여는 것, 울퉁불퉁한 인도 위를 지나는 것, 무인판매대에서 주문하는 것이 별일이 아니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불편함의 정도가 증가하면, 불편함은 개인이 '무엇을 할 수 없는 장애(disability)'가 되고, '사회적으로 불이익을 받는 장애(handicap)' 상태로 확대된다. 개인적 불편함이 신체기능적 제약으로, 사회적 역할의 불능 상태로 이어진다. 이처럼 사물의 불편함은 개인의 신체 문제보다는 기능적 장애(functional disability) 즉 개인의 사회 참여와 활동이 제한되는 불평등에 방점을 찍는다. 디자인 불평등이다.
90%의 테제에 대한 안티테제일까? 아니면 인구 피라미드가 항아리형으로 변하면서, 우리 모두 배제된 10%가 될 수 있다는 자각이 높아진 것일까? 90%가 아닌 100%를 지향하는 디자인에 전보다는 많은 관심을 보이는 듯하다. 보편적 디자인(universal design), 모두를 위한 디자인(design for all), 포용적 디자인(inclusive design) 등 신체적 약자를 배제하지 않는 디자인은 고약한 일이 빈번한 세상에서 너무나 '착한' 디자인이다. 하지만, 배려와 착함은 배제한 자의 시선이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현실적인 실천은 부족했다. (어쩔 수 없이) 이익을 위해 일반인과 장애인,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고 배제해왔다. 누구나 사고를 당할 수 있고, 아플 수 있고, 노인이 된다. 하지만 나 역시 '젊음'을 예찬하되 '늙음'은 내 일이 아니었고, 신체적으로 '할 수 없음' 또한 나와는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도 노인이 되었고 나도 중년이 되었다. 의학의 발전으로 내가 사랑하는 그들을 더 오래 이 세상에서 볼 수 있음에 감사하지만, 감사의 시간만큼 더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이 신체적 기능 약자로 살게 된다. 그들이 느끼는 세상의 불편함과 불평등은 점점 더 크게, 더 오랫동안 다가올 것이다. 비배제의 디자인이 필요한 시점이다. 주민등록 인구통계에 따르면 2019년 대한민국의 평균 나이는 42.1세이다. 노화는 약 70세 즈음부터 급격해진다. 그렇다면 28년 후 오늘, 여러분은 아직도 이 불편함과 불평등을 '감수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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