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28년 후 오늘도 감수하시겠습니까?

김태선 경일대 산업디자인과 교수

김태선 경일대 산업디자인과 교수
김태선 경일대 산업디자인과 교수

지난겨울 우리를 TV 앞에 잡아둔, 대한민국의 불평등 상황을 입시를 통해 비추었던 드라마에서 상징적인 사물을 하나 뽑으라 하면 나는 피라미드를 말할 것 같다. 그 드라마에서 피라미드와 관련된 대사가 생각난다. "피라미드에서 미이라는 요기 요쯤에 있대, 여기에 무게중심이 있대, 그니까 여기가 제일 좋은 자리, 중간이 최고야." 가장 좋은 자리, "요기 요쯤"은 피라미드의 중간 지점이었다.

이 지점을 벨커브(bell curve)라 불리는 정규분포곡선에서 찾으면, 볼록하게 솟은 곡선의 중간 영역 중에서도 가장 가운데, 평균점일 것이다. 벨커브는 이름처럼 좌우대칭이면서 양끝에서 가운데로 올수록 볼록하게 솟은 종 모양의 그래프이다. 수능시험 성적분포, 키나 몸무게 분포 등 많은 것들이 이 곡선을 통해 설명될 수 있다. 이 그래프는 평균에 근접할수록 해당하는 사람이 많음을 보여준다.

일상의 물건은 이 평균점에서 가장 멀리 있는 사람들, 즉 극단치를 배제한 신체 기능 측면에서 '정상인' '일반인'이라 불리는 집단을 기준으로 한다. 전체 인구에서 5~95퍼센타일 범위로, 전체 인구의 약 90%를 차지한다. 사회적 불평등의 심화 속에 전체의 90%를 대변한다고 하니 '참! 괜찮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90%는 배제된 10%의 존재를 암시한다. 이 10%에는 선천적으로 또는 후천적(사고나 질병)으로 장애가 있거나, 또는 노화로 인해 기능이 손상·저하된 사람 등이 포함될 수 있다.

90%를 위한 일상은 10%의 누구에겐 불편함 또는 그 이상이다. 생수병을 여는 것, 울퉁불퉁한 인도 위를 지나는 것, 무인판매대에서 주문하는 것이 별일이 아니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불편함의 정도가 증가하면, 불편함은 개인이 '무엇을 할 수 없는 장애(disability)'가 되고, '사회적으로 불이익을 받는 장애(handicap)' 상태로 확대된다. 개인적 불편함이 신체기능적 제약으로, 사회적 역할의 불능 상태로 이어진다. 이처럼 사물의 불편함은 개인의 신체 문제보다는 기능적 장애(functional disability) 즉 개인의 사회 참여와 활동이 제한되는 불평등에 방점을 찍는다. 디자인 불평등이다.

90%의 테제에 대한 안티테제일까? 아니면 인구 피라미드가 항아리형으로 변하면서, 우리 모두 배제된 10%가 될 수 있다는 자각이 높아진 것일까? 90%가 아닌 100%를 지향하는 디자인에 전보다는 많은 관심을 보이는 듯하다. 보편적 디자인(universal design), 모두를 위한 디자인(design for all), 포용적 디자인(inclusive design) 등 신체적 약자를 배제하지 않는 디자인은 고약한 일이 빈번한 세상에서 너무나 '착한' 디자인이다. 하지만, 배려와 착함은 배제한 자의 시선이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현실적인 실천은 부족했다. (어쩔 수 없이) 이익을 위해 일반인과 장애인,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고 배제해왔다. 누구나 사고를 당할 수 있고, 아플 수 있고, 노인이 된다. 하지만 나 역시 '젊음'을 예찬하되 '늙음'은 내 일이 아니었고, 신체적으로 '할 수 없음' 또한 나와는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도 노인이 되었고 나도 중년이 되었다. 의학의 발전으로 내가 사랑하는 그들을 더 오래 이 세상에서 볼 수 있음에 감사하지만, 감사의 시간만큼 더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이 신체적 기능 약자로 살게 된다. 그들이 느끼는 세상의 불편함과 불평등은 점점 더 크게, 더 오랫동안 다가올 것이다. 비배제의 디자인이 필요한 시점이다. 주민등록 인구통계에 따르면 2019년 대한민국의 평균 나이는 42.1세이다. 노화는 약 70세 즈음부터 급격해진다. 그렇다면 28년 후 오늘, 여러분은 아직도 이 불편함과 불평등을 '감수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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