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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시설에선 유령과 다름없는 생활…의지대로 할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

장애인 탈시설·자립생활 권리보장, 장애인 활동지원 24시간 보장 등의 요구는 장애인들의 숙원이다. 지난 2014년 420장애인차별철폐경북공동투쟁단 장애인들이 경북도청 앞에서 장애인 생존권 쟁취를 위한 릴레이 집회를 열고 있는 모습. 매일신문DB.
장애인 탈시설·자립생활 권리보장, 장애인 활동지원 24시간 보장 등의 요구는 장애인들의 숙원이다. 지난 2014년 420장애인차별철폐경북공동투쟁단 장애인들이 경북도청 앞에서 장애인 생존권 쟁취를 위한 릴레이 집회를 열고 있는 모습. 매일신문DB.

발달장애인과 시민사회의 잇따른 요구에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탈시설화 정책과 중장기적 로드맵은 미비하다는 평가가 많다.

전문가들은 '탈시설'이라는 명목 아래 집을 마련해 주기만 하면 끝난다는 사고 방식은 대단히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보다 촘촘한 지원체계와 지역사회의 지지, 합리적 예산지원 체계 등이 보완돼야 한다는 것이다.

2009년 시설을 나와 홀로 생활하고 있는 천종렬(45)씨. 현재 장애인 장담 업무를 맡고 있는 그는 시설에서
2009년 시설을 나와 홀로 생활하고 있는 천종렬(45)씨. 현재 장애인 장담 업무를 맡고 있는 그는 시설에서 "지난 28년 동안의 나는 유령과 다름없었다"며 장애인 탈시설화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주형 기자.

◆시설을 나왔더니 삶이 열렸다.

"시설에 살면 편한데 왜 굳이 나와 혼자 살려고 하는지 물어요. 왜 우리는 동물처럼 사회와 단절된 공간에서만 모여서 살아야 하나요?"

천종렬(45) 씨는 느릿하지만 분명하게 의사를 밝혔다.

천 씨는 부산과 울산의 장애인 시설에서 보낸 28년이 "유령과 다름는 생활이었다"고 했다. 밖으로 나갈 수도 없고, 하고 싶은 공부를 하거나 연애를 할수도 없었다. 누워 있거나 앉아있는 것이 유일한 선택지지만 이마저도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가 시설을 박차고 나온 것은 2009년이다. 그는 이후 대구대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고 지금은 장애인지역공동체에서 동료 상담 업무를 맡고 있다. 쉬는 날에는 취미인 무선조종 자동차를 조종하기도 하고, 친구들을 불러 식사를 같이하거나 영화관에 가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천 씨는 "시설을 나와보니 사회에 자리잡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게 됐다. 그러나 시설 안에서는 나도 없고 꿈도 없었다. 많은 장애인이 탈시설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홀로서기까지의 과정은 쉽지 않았다. 당장 오갈 곳이 없어 몇 개월간 요양원 생활을 했다. 먼저 탈시설한 동료와의 인연으로 가까스로 대구에 정착했지만 주간에만 제공되는 활동지원 탓에 갖가지 사고는 물론 숱한 고생도 겪었다.

장애인 단체들은 "편하다는 이유로 장애인을 시설에 고립시키는 것은 인권 억압이며, 이들을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인정하고 공존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발표한 시설 거주 장애인 실태조사도 장애인 단체들의 주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전국 중증장애인 거주 시설 45곳을 조사한 결과 ▷TV를 마음대로 볼 수 없다(24.4%) ▷식사와 간식 선택이 제한되거나 먹고싶은 것을 먹을 수 없다(31.2%) ▷시설 내 각종 시설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없다(31.2%) ▷자유롭게 목욕할 수 없다(34.8%) ▷기상과 취침시간(55.0%) 식사시간(75.4%) 등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 ▷개인 휴대전화가 없다(71%) ▷통장 등 개인정보도 스스로 관리할 수 없다(61.7%) 등 개개인의 욕구를 뒷받침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24시간 보호 어려운 체험홈, 실종·범죄 노출되기도

현재 탈시설에 대해서는 자립공간 규모 확충 말고는 뚜렷한 정책이나 제도가 없다.

대구시는 2015년 이후 지속적으로 자립공간 수를 늘려 올해는 중증장애인자립생활센터(IL센터) 7곳에 체험홈 15개, 자립생활가정 36개를 운영하고 있다.

탈시설을 결심한 장애인이 일반적으로 가장 먼저 찾게 되는 곳이 체험홈이다. 체험홈은 갑작스레 사회에 합류한 장애인을 위한 일종의 완충 기회를 제공하는 곳이다. 장애인 2~4명이 같이 생활하는 거주시설에 자립생활센터 코디네이터 등 활동지원 인력 1명이 수시로 드나들며 생활을 돕지만 보통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되는 것이 한계다. 저녁에서 새벽 시간대는 사실상 안전관리 사각지대에 놓인다.

응급상황 대처력이 약해 자신을 스스로 위험에 빠뜨리거나 범죄자가 되는 일도 생기고 있다.

대구발달장애인지원센터에 따르면 올해 들어 탈시설 발달장애인이 폭행 및 성범죄로 형사처벌을 받은 사례가 2건 발생했다.

지난 1월에는 자립생활체험가정에 있던 50대 발달장애인이 동구에서 실종되기도 했다. 생활 3주차 만에 활동반경을 넓히던 이 남성은 집근처에서 방향 감각을 잃고 실종된 지 54시간 만에 경찰에 의해 달성군에서 발견됐다. 발견 당시 담당 사회복지사의 명함과 현금도 가지고 있었지만 경험 부족으로 적절히 대처할 수 없었던 것이다.

박인규 한사랑장애인지역생활지원센터장은 인력·인프라 확충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장애인의 경험 부족에서 나오는 헤프닝에 가까운 사고를 지역 주민들은 심각한 범죄로 받아들일 수 있다보니 주민과의 갈등이 반복·격화될 우려도 크다.

박 센터장은 "자립 지속성은 결국 장애인들이 지역 사회 흡수 여부가 중요하기 때문에 탈시설 장애인들이 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충분한 활동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대구시는 활동지원사가 필요한 탈시설 장애인에게 월 20~200시간 활동지원을 하고 있다. 또 탈시설 장애인에게 영구임대 아파트 우선 입주 기회를 줘 지난해에만 7가구가 입주했다.

이달 기준 최중증장애인 21명에게는 시범적으로 24시간 활동지원이 제공되고 있다. 시는 오는 2022년까지 40명을 추가로 선정해 지원할 방침이지만 가장 큰 문제는 예산이다.

대구시 관계자는 "장애인 활동을 지원할 인력 확충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지만 24시간 활동지원 서비스에는 장애인 1명당 연간 1억2천800만원이 소요돼 재정적인 문제가 크다"며 "보건복지부가 종합계획을 곧 발표할 예정이라 대구시도 계획에 따라 적극적으로 인프라 확충을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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