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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평의 귀촌한담] 산골 소통의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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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말을 해야만 소통이 되는 것은 아니다. 마음을 전하는 것이 소통이다. 눈빛, 미소, 몸짓, 주고받기 모두가 소통 수단이다. '왜 사냐면 웃지요' 하는 시구절이 문득 떠오른다. 마을 어르신들은 산골 사투리로 재미난 말씀을 많이 하신다. 일일이 열거할 수는 없지만 단축형 사투리다. 그런데 대부분 귀가 약해서 소리 지르지 않으면 잘 알아듣지 못하신다. 그래서 억세고 시끄럽게 들린다.

귀가 거의 들리지 않는 할머니끼리 얘기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볼 때가 있다. 알아듣기는 하시는 건지. 옆에 계신 할머니들도 그 광경을 보면서 '저 둘이 뭐 하는 거냐' 하시면서 깔깔대신다. 나도 우습지만 도와 드릴 방법이 없다. 통역 재주가 없어서다.

눈빛은 은근한 마음 주기이면서 통제 수단이다. 맛난 것을 권하거나 지나친 언동을 삼가게 한다. 몸짓은 감정의 표현이다. 학계마을이라는 핑계로 나는 마을회관을 드나들 때 날개춤을 출 때가 있다. 서로를 기분 좋게 만드는 몸짓이다. 할머니도 가끔 따라 하신다. 나더러 주책바가지라고 할 사람도 있겠지만 마을회관에서는 나이 어린 내가 재롱을 떠는 것이 맞다. 즐겁게 놀기 위해서는 체면을 잠시 내려놓고 쉰 소리도 하는 게 좋다. 귀가 잘 안 들려도 한바탕 큰소리로 떠들고 놀면 스트레스가 풀리게 마련이다.

검정 비닐 봉다리는 매우 유용한 소통 수단이다. 내용물이 안 보이게 하면서 서로 성의를 표하는 '주고받기 소통'이다. 공장댁이라는 아지매가 있었다. 남편이 도자기 공장을 했기에 공장댁이라 불렀다. 다소 어눌해도 '주고받기 소통'은 매우 확실했다. 갖고 싶은 것이 있으면 솔직히 달라고 했고, 그래서 조금 싸주면 반드시 검정 비닐 봉다리에 뭔가를 싸서 갖다 주었다. 그녀는 늘 주변 사람 눈치를 보며 살았기에 검정 봉다리에 물건을 넣어달라고 했다. 주고받는 소통의 일인자였다. 작년에 진영으로 이사 간 공장댁의 기지에 감탄하는 바이다. 가끔 학계마을에 올 때는 꼭 집에 들러서 인사하고 간다. 이젠 검정 봉다리가 그녀의 손에 들려 있지 않다. 도시 사람이 다 돼 가는가 보다. 부디 건강히 잘 지내시길.

대구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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