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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존엄하게 산다는 것/게랄트 휘터 지음/ 박여명 옮김/ 인플루엔셜 펴냄

경북대학교 뇌과학연구소 주최 청소년 뇌과학 실험활동 모습. 매일신문DB
경북대학교 뇌과학연구소 주최 청소년 뇌과학 실험활동 모습. 매일신문DB

"당신에게 아주 큰 이익을 얻을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그 기회가 당신의 존엄성을 무너뜨리는 일입니다. 과연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겠습니까."

경쟁에서 이기는 것만이, 부와 명성을 얻는 것만이 성공한 삶으로 인정되는 시대에 살아가는 우리는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선택인지 깊이 공감하게 된다. 그럼 우리의 삶은 존엄한가?

존엄하게 산다는 것
존엄하게 산다는 것

지은이 게랄트 휘터는 불안과 우울, 잠재력과 동기 부여 등에 관한 뛰어난 뇌과학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삶에 대한 통찰을 대중에게 친숙한 언어로 전하는 독일의 신경생물학자이자 시대를 대표하는 지성인이다. 독일과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지에 비영리단체 '잠재적 개발 아카데미'를 설립해 대안적 삶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단서를 제시하고 있다.

◆지금은 존엄을 잃어버린 시대

"흥미로운 것은 애정과 소속감, 주체성과 자유와 같은 인간의 기본적 욕구를 무너뜨리는 환경에 처했을 때, 우리 두뇌를 정밀하게 촬영해보면 몸이 고통을 느낄 때와 같은 영역이 활성화된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반존엄한 현실로 인해 뇌가 고통 받는 것이다."

거대한 자본주의 물결 속에 기업과 사회, 개인이 경쟁하고 살아남기 위해 택한 모든 것들이 더 심각한 결과로 되돌아왔다. 지구 온난화와 대기오염 등 생존을 위협하는 환경재앙, 이익 극대화라는 미명 아래 AI와 자동화로봇으로 대체되는 노동의 현주소, 온라인에서 만나는 수많은 광고와 과잉 정보들 속에서 비대해져버린 개인의 탐욕까지. 이런 현실 속에서 그 자체로 목적이어야 하는 인간은 평가의 대상과 도구로 전락했다.

뇌구조
뇌구조

◆존엄은 권리가 아닌 뇌의 감각

"모든 생명체는 내부적인 질서를 세워 해당 시스템의 에너지를 최소화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생존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기본적인 원리 때문에 인간의 뇌에 문제가 발생한다. 우리 뇌는 휴면 상태, 즉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아무런 생각조차 하지 않을 때에도 이미 가용 가능한 에너지의 20%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두뇌는 복잡한 현대사회 속에서 제 기능을 발휘하기 어려울 정도로 큰 혼란에 빠져 있다. 이런 혼란을 잠재우고 일관된 방향을 제시하는 내면의 나침반이 필요한데, 뇌 속에 뿌리 깊이 형성된 감각인 '존엄성'이 그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신경생물학적 관점에서 존엄이란 인간의 태도와 행위에 영향을 미치는 일종의 신념체계다. 인간의 두뇌는 타인의 경험을 통해 상호적으로 학습하고 구조화되는 '사회적 기관'으로, 평생에 걸쳐 사고와 행동을 통제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뉴런의 패턴을 새롭게 형성한다.

◆존엄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문제를 해결할 방법 또한 그 사회를 살아가는 인간, 그리고 세대를 넘어 진화를 이어갈 이들에게 있다. 이는 태초부터 인간이 지닌 생물학적 능력이자 잠재력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뇌에는 인간으로서,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관념을 일깨울 수 있는, 더 나아가 일깨울 수밖에 없게 만드는 특수한 조건이 있다. 바로 인간 뇌에 거대한 개방성 그리고 그것을 통해 평생에 걸쳐 이어지는 뇌의 가소성이다."

아이들은 무언가 잘못되었을 때 이를 직감하며 빨간 램프에 불이 들어온다. 아직 신념 체계의 형성단계를 거치지 않았음에도 아이들은 이미 태어날 때부터 아주 미세한 감정의 형태로 존엄이라는 감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과도한 경쟁사회 속에서 필연적으로 타인의 목적, 기대, 더 나아가 명령의 대상이 되는 경험에 부딪히며 본능으로 타고난 존엄성을 서서히 잃어간다. 아이들은 고통을 피하기 위해 자신이 당한대로 타인을 수단으로 취급하거나 스스로를 타인의 평가 대상으로 만들어버리는 해결책을 찾아나선다.

◆어떻게 존엄을 회복할 것인가

"인간의 뇌는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뇌의 감정 중추가 활성화되면서 혼란을 일으키게 되는데, 뇌의 활동이 일관된 상태에서 멀어지면 이를 안정 시키도록 도와주는 무언가를 필요로 하게 된다. 그과정에서 활성화된 신경망들은 더욱 확장되고 강화된다.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삶의 중요한 의미를 찾는 과정에서 발견한 해결책들을 기반으로 뇌가 구성되는 것이다."

지은이는 "타인과 관계 속에서 보호와 소속감, 창의력과 자율성을 충분히 경험한 사람은 강하게 뿌리 내린 '존엄'이라는 신념을 바탕으로 그 어떤 외부의 유혹에도 자신의 삶을 지탱할 수 있다"며 "가족과 교육기관, 일터 등 다양한 공동체에서 존엄성을 끊임없이 인식하도록 돕는 과정이 선행된다면 개인뿐 아니라 사회의 근본적인 변화와 발전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232쪽 1만4천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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