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덕현의 엔터인사이트] 대하사극 '이몽'과 '녹두꽃', 기대만큼 큰 아쉬움

‘이몽’과 ‘녹두꽃’, 다루지 않던 역사를 꺼내놓긴 했는데

최근 지상파가 야심차게 내놓은 대하사극 두 편이 눈에 띈다. 하나는 일제강점기 의열단 단장이었던 김원봉을 소재로 한 MBC '이몽'이고, 다른 하나는 동학농민혁명을 다룬 SBS '녹두꽃'이다. 많은 제작비가 투여된 기대작들, 과연 성과는 있는 걸까.

드라마
드라마 '이몽'

◆김원봉을 소재로 한 '이몽', 어째 매력이 없을까

애초 독립운동가 김원봉을 소재로 한 드라마가 제작된다고 했을 때 나왔던 우려는 정치적인 해석에 대한 것이었다. 물론 지금은 남북이 대결보다는 소통하려는 분위기가 더 만들어지고 있지만, 1948년 월북한 김원봉을 미화한다는 사실은 여전히 논쟁을 만들지 않을까 하는 시각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영화 '암살'과 '밀정' 등을 통해 김원봉이라는 인물에 대한 재조명이 이뤄지고 있었고, 올해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라는 시점에 이 인물을 담은 다큐멘터리들이 나왔다. 이제 충분히 우리네 독립운동사에서 이 인물을 다루는 일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어느 정도는 생기고 있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김원봉을 주인공으로 세운 MBC '이몽'이 방영되면서 이런 우려들은 사라졌다. 오히려 왜 이제야 이런 중요한 독립운동가를 다루느냐는 이야기까지 나왔으니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엉뚱하게도 드라마의 완성도에서 불거져 나왔다. 김원봉이라는 중요한 인물을 다루고 있고, 그 인물의 삶 자체가 그 어떤 드라마보다 드라마틱하다는 걸 이제 우리네 대중들이 인지하고 있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드라마에 등장하는 김원봉(유지태)은 그다지 매력을 느끼기가 어려웠다. 이유는 대본과 연출 그리고 연기까지 총체적으로 부실한 완성도에 있었다.

김원봉이 납치해간 이영진(이요원)을 구하기 위해 홀로 중국 상하이 청방에 뛰어 들어가 사투를 벌이는 장면은 독립운동가의 이야기라기보다는 '조폭 영화' 같은 느낌을 줬다. 치밀한 심리묘사나 인물에 대한 깊이 있는 해석은 별로 보이지 않고 '멋있어 보이려는' 액션에만 치중하다보니 드라마는 김원봉이라는 인물을 표면적으로만 그리게 됐다. 연출에 있어서도 시대극에 중요할 수밖에 없는 미장센이나 '톤 앤 매너'가 거의 보이지 않고, 세트가 거의 드러나는 장면들이나 허술한 CG가 더해져 전혀 깊이가 느껴지지 않는 한계를 보였다. 이러니 연기에 몰입이 생기기 어려웠다. 유지태는 너무 감정적인 인물처럼 김원봉을 연기하고, 이요원은 밀정이라는 캐릭터를 너무 가녀리게만 연기하는 모습으로 비춰졌다.

김원봉 같은 중요한 인물을 거의 처음으로 다루는 드라마가 이렇게 떨어지는 완성도로 그 인물을 매력없게 그리고 있다는 건 여러모로 아까운 일이다. 무려 200억이 투자된 작품이지만 그 수치가 무색하게 느껴진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당연히 시청률은 뚝뚝 떨어졌다. 처음 기대감을 가진 시청자들로 7% 시청률(닐슨 코리아)로 시작한 드라마는 심지어 4%대까지 시청률이 빠졌다.

드라마
드라마 '녹두꽃'

◆'녹두꽃', 동학농민혁명을 잘 녹여내곤 있지만

동학농민혁명 역시 우리네 사극에서는 좀체 다뤄지지 않았던 소재다. 그 많은 조선과 고려를 다룬 사극들이 있었지만 동학농민혁명이 그 소재가 된 적이 거의 없게 된 건 정치적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좌파니 우파니 하며 진보와 보수가 팽팽히 이념대립을 하던 정치상황 속에서 동학농민혁명 소재의 드라마는 그 자체로 보수 우파들의 날선 공격의 대상이 될 수 있었다. 민초들의 봉기나 '혁명'이라는 단어에도 민감해하던 시절이 아닌가. 하지만 최근 몇 년 간 촛불시민혁명 같은 민중의식을 경험하면서 그 뿌리로서 동학농민혁명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흔히 "촛불 이전에 횃불이 있었다"고 표현되는 동학농민혁명이 재조명되게 된 건 최근의 촛불시민혁명과 무관하지 않다. 작년 드디어 동학농민혁명 기념일이 제정되고 올해 처음으로 열린 기념식 자리에서 이낙연 총리가 "촛불혁명도 잘못된 권력을 백성이 바로잡는다는 동학정신의 표출"이라고 표현한 건 이런 변화를 잘 말해준다.

동학농민혁명을 다룬 사극 SBS '녹두꽃'은 그러나 주인공으로 녹두장군 전봉준(최무성)을 주인공으로 세우지 않았다. 대신 '거시기'로 불리며 저잣거리에서 민초들을 핍박하던 백이강(조정석)이라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세워, 훗날 동학군 별동대장으로 변모해 성장하는 과정을 담았다. 피도 눈물도 없이 민초들을 수탈해온 고부관아의 이방 백가(박혁권)가 본처의 여종을 겁탈해 태어난 백이강은 본처 소생인 동생 백이현(윤시윤)과 엇갈린 길을 가게 된다. 백이강은 동학군의 별동대장으로 백이현은 그들을 토벌하는 향군으로 맞서게 되는 것. 전봉준이 아닌 한 민초를 주인공으로 세운 건 이 드라마가 동학농민혁명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하는 걸 잘 보여준다. 그것은 전봉준 같은 한 영웅에 의해 이 혁명이 이뤄진 게 아니라, 이름 모를 무수한 민초들의 봉기로 이뤄진 것이라는 의미다.

'녹두꽃'은 실제를 방불케 하는 스케일이 돋보이는 전투장면들을 재현해 보여주고 있고, 또 인물들 간의 욕망과 심리가 잘 다뤄져 있어 대본, 연출, 연기의 완성도 자체가 높은 편이다. 하지만 이런 완성도에 비해 시청률은 6,7% 대에 아쉽게 머물러 있다. 이렇게 된 건 동학농민혁명이라는 소재 자체가 갖는 뭉클함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결국은 '실패한 혁명'이라는 역사적 사실이 만들어내는 우울한 정조가 드라마 시청의 어떤 장벽 같은 걸 만들어내고 있어서다. 의미와 재미도 충분하지만, 요즘처럼 하루하루가 힘겨워 고구마보다는 사이다를 더 원하는 대중들에게 '녹두꽃'은 쉽게 넘길 수 없는 퍽퍽함으로 다가온다는 것.

드라마
드라마 '이몽'

◆귀한 소재지만 아쉬운 성적, 그래도 남는 위안

'이몽'도, '녹두꽃'도 기대한 만큼 아쉬움이 큰 사극이다. 김원봉이라는 인물에 대한 재조명을 제대로 해 그 인물이 얼마나 매력적인가를 보여줘야 할 '이몽'은 기대에 못 미치는 드라마적 완성도로 소재 자체를 아깝게 만들고 있다. 동학농민혁명이라는 어찌 보면 우리네 풀뿌리 민주주의의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는 소재를 가져와 재현해내려 애썼지만 '녹두꽃'이 다소 무겁게 느껴지는 이야기 구조로 시청자들이 쉽게 진입하지 못하게 된 건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나마 남는 위안은 이런 소재들이 이제 사극이나 시대극으로 다뤄질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사실 일제강점기는 근현대사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부분이 많아 드라마 같은 작품들이 이를 어떻게 해석해내느냐에 따라 많은 논란이 야기되기도 했던 시점이다. 김원봉 같은 인물은 더더욱 논쟁적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몽' 같은 작품이 그만한 논쟁을 일으키고 있지 않다는 건 이제 이 일제강점기를 바라보는 시선에 조금은 여유가 생겨나고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동학농민혁명도 마찬가지다. 사실 '혁명' 혹은 '횃불'이라는 말만 들어도 색안경을 끼고 보던 시대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그 시대를 넘어 동학농민혁명을 기념일로 제정했고, 이를 자유롭게 소재로 하는 사극 또한 볼 수 있게 됐다. 민중의식의 확장이 만들어낸 변화가 아닐 수 없다. 기대가 컸던 만큼 큰 아쉬움을 남기는 두 작품이지만, 그래도 이런 소재들이 다뤄지기 시작했던 건 그나마 성과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이 향후 이 시대를 보다 흥미진진하게 담는 작품들의 초석이 될 것이니 말이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