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칼럼] 아첨과 독재

"천재적인 예지와 탁월한 영군술, 무비의 담력과 필승의 신념을 지니시고… 조국 통일의 밝은 앞길을 열어 나가시는 위대한 은인, 불세출의 영장."

"우리의 희망의 등불이요, 국난 극복을 해결해 줄 구세주."

"100년마다, 1세기마다 사람이 하나 난다 그러는데 건국 100년, 3·1절 100년(에) 나타난 분."

언뜻 들어보면 이런 발언들의 화자(話者)나 대상을 따로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다.

첫 발언은 북한 선전 매체 '우리민족끼리'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군 최고사령관 추대 7주년을 맞이한 지난해 12월 30일 김 위원장을 한껏 치켜세운 선전 문구다.

뒤 발언은 지난달 유림 단체 두 인사가 경북 안동을 방문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를 향해 각각 던진 용비어천가다.

기독교 단체를 대표하는 한 인사도 지난 3월 황 대표에게 "우리 하나님께서 일찍이 준비하셨던 황교안 대표님을 자유한국당의 대표님으로 세워 주셨다" "이승만 대통령, 박정희 대통령을 이어가는 세 번째 지도자가 되어줬으면 좋겠다"란 표현을 쏟아냈다.

정치판에 아첨과 아부의 말이 판을 친다.

60여 년을 세습 독재 체제로 이어온 북한은 그렇다 치더라도 21세기 한국 정치·종교계에서 벌어지는 이 같은 상황은 볼썽사납기 그지없다.

국내에서 일본 제국주의 치하와 독재 정권 시절, 아첨하고 알랑거렸던 교언영색의 모양새는 언론과 종교계에서 특히 두드러졌다.

우리나라 대표적 한 중앙 일간지는 1936년부터 5년 동안 매해 신년마다 일본 왕의 사진을 신문에 실었다. 심지어 1936년 신년호에는 "우리는 대일본제국의 신민으로서 천황폐하께 충성을 다하겠다"는 요지의 사설도 냈다.

일제와 독재 정권 아래에서 권력이나 부의 찌꺼기라도 받아 챙기려고 횡행하던 행태를 50년, 100년이 지난 지금 이어가는 당사자들은 낯부끄럽지 않은지 모를 일이다.

언론이나 종교가 균형을 잃고 한쪽으로 쏠릴 때 독재 정권을 낳을 소지가 크다는 것은 한국 근현대사는 물론 세계사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북한이 그렇고 나치 독일이 그랬다. 역사적으로 편향된 언론과 종교가 나팔수로 동원돼 독재 정권을 낳기도 하고, 거꾸로 독재 정권이 언론과 종교를 장악해 핵심 통치 수단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언론과 종교가 특정 정파에 편향돼 아첨을 일삼을 때 독재의 싹이 트고, 균형을 잡고 바른 말을 할 때 민주주의가 꽃핀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성싶다. 두 집단은 민주주의에 약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는 셈이다.

역으로 국가 지도자나 회사 CEO가 아첨꾼의 달콤한 언사에만 빠져 지내다가는 나라나 회사를 망치기 십상이다. 중국 삼국시대 촉한의 황제 유선이 환관 황호의 아첨에 현혹돼 지내다 결국 위나라에 망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듣기 좋은 말 하는 사람들만 끌어안고 쓴 말 하는 사람들은 모조리 내치면서 작금의 불행한 사태를 자초했다.

아내에게 아부하고 남편에게 아첨하는 것은 가정의 행복 윤활유가 되겠지만, 정치판이나 국가권력 주변에서 난무하는 아부와 아첨은 민주주의의 독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새삼 되새기게 하는 요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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