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일본 때리기' 왜?

이대현 논설위원
이대현 논설위원

장면1. 2017년 9월 미국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은 한·미·일 정상 업무 오찬에서 "미국은 우리의 동맹이지만 일본은 동맹이 아니다"고 했다. 일본이 요구하는 한·미·일 군사동맹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을 밝힌 것이지만 면전에서 이 말을 들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어떤 마음을 먹었을지 짐작이 간다.

장면2. 지난해 5월 일본 도쿄 총리공관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 오찬에서 문 대통령은 아베 총리로부터 한글로 '문재인 대통령 취임 1주년 축하드립니다'라고 적힌 케이크를 받았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이가 안 좋아 단것을 잘 못 먹는다"고 사양했고 한국 측 참모들이 케이크를 나눠 먹었다. 문 대통령이 케이크를 먹지 않자 아베 총리와 참모들이 당황했다는 후문이다.

일본 정부의 경제 보복 도화선은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일본 기업 배상 판결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노골화한 '일본 때리기'가 지금의 사태를 가져온 근본 원인이란 분석도 나온다. 왜 집권 세력은 일본 때리기에 혈안이 됐을까.

포털사이트 댓글조작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드루킹'의 항소심 최후 진술에서 답을 유추할 수 있다. 드루킹은 "문 대통령 측근에게 일본과 대화를 재개해야 한다고 수차례 문제를 제기했지만 그들은 일본이라는 말만 나오면 질색했다"며 "선악 이분법으로 일본과 아무런 대화도 하지 않으려 한다"고 했다. 또 "관제 민족주의로 온 정권이 똘똘 뭉쳐 반일 외치다 나라가 망국으로 가는 게 아닌지 우려를 금할 수 없다"는 말도 했다. 선악 이분법에서 일본에 대한 집권 세력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관제 민족주의에서는 정권 실정에 대한 국민 비판 희석은 물론 내년 총선에 활용하려는 집권 세력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다.

한·일 간 수출 규제 갈등이 확산하는 가운데 우리 정부 요청에도 미국이 중재에 나서지 않고 있다. 오랜 기간 경제 보복을 준비한 아베 총리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사전에 의논했을 가능성이 크다. "형님! 한국을 손 좀 볼 테니 모른 척하고 계세요"라고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일본의 경제 보복은 한국이 고립무원(孤立無援) 신세임을 다시금 일깨워주고 있다. 북한처럼 '우리 민족끼리'로 가려는 집권 세력의 행태 탓에 나라가 흔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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