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반도체와 '역사타령'

이대현 논설위원
이대현 논설위원

한국이 세계 최고의 '반도체 국가'로 올라선 세 가지 요인은 이병철 삼성 창업주, 여고 출신 생산직 사원, 경북대 전자공학과라는 분석은 탁견(卓見)이다. 이 창업주의 선견지명과 결단, 60㎞ 행군까지 하면서 우수한 제품 만들기에 매진한 생산직 사원들의 땀과 눈물, 연구실에서 나온 결과를 생산 현장에서 성공적으로 실현한 경북대 전자공학과 졸업생들이 한국을 30년 이상 먹여 살린 반도체 신화를 만들었다.

이 창업주가 1983년 '우리가 왜 반도체 산업을 해야 하는가'라는 '도쿄 선언'을 발표하자 삼성 안팎은 물론 정부마저 한국 경제가 망한다며 반대했다. 일본 미쓰비시연구소는 '삼성이 반도체 사업에서 성공할 수 없는 다섯 가지 이유' 보고서까지 내놓으며 코웃음을 쳤다. 그러나 이 창업주는 "이 나라의 백년대계를 위해 어렵더라도 전력투구할 때가 왔다"며 적자를 보면서도 반도체 투자를 멈추지 않았다. 좌우명인 사업보국(事業報國)을 올곧게 실천했다. 그는 "일본은 하는데 우리는 왜 못하냐"며 임원들을 독려했다. 이 창업주의 '도쿄 선언'은 한국 경제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결정으로 꼽히고 있다.

반도체가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지난해 수출에서 반도체 비중이 26%에 달했고 국내총생산(GDP)의 7.8%를 반도체가 차지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반도체 산업을 정밀타격하고 나선 것은 반도체를 공격하면 한국 경제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렸다. 반도체 위기는 한국 산업, 나아가 경제 위기를 촉발하는 확실한 트리거(방아쇠)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반도체 위기를 돌파하려고 혈혈단신 일본 출장을 다녀오는 등 동분서주하고 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공들여 쌓은 '반도체 제국'이 무너질지도 모를 위기 앞에 이 부회장의 심경은 절박할 수밖에 없다.

일본의 경제 보복으로 기업인들이 발을 동동 구르는 반면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 정부, 더불어민주당은 해법 찾기보다 '일본 때리기'에 치중하는 모양새다. 30년 넘게 한국 경제를 이끈 반도체 산업이 망가질 위기에 처했는데도 '12척의 배'와 같은 '역사타령'만 늘어놓고 있다. 세계 일류로 꼽히는 한국 경제를 삼류·사류 정치가 망가뜨리는 우매한 짓을 언제까지 되풀이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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