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창] 건강주권

이장훈 경북대병원 순환기내과 교수
이장훈 경북대병원 순환기내과 교수

2019년 여름, 대한민국은 두 개의 파도를 넘고 있다. 타는듯한 더위와 일본의 수출규제.

찜통더위에 환자들이 지겹도록 하는 질문이 있다. "선생님, 더워서 입맛도 없고 기운이 없는데 보양식을 먹어도 되나요? 혹시, 심장에 나쁜 건 아닌가요?" 여름철 단골 메뉴 같은 질문이지만, 매년 같은 질문이 반복되는 이유는 아마도 뾰족한 대답을 듣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TV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자칭 전문가라고 하는 '쇼 닥터'들이 몸에 좋은 음식에 대한 정보를 경쟁하듯 토해내는데,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봐도 의과대학에서 우리의 일상생활 속 음식에 대해 제대로 배운 기억이 없다. 때문에 관심을 갖고 찾아보지 않은 경우 자칫 환자에게 잘못된 정보를 전달할 수 있어서 늘 조심스럽다.

올 해도 어김없이 환자들의 음식관련 질문들과 씨름하던 중, 동료 의사로부터 문자를 한 통 받았다. 최근 음식에 대해 잘 정리된 책이 있는데 읽어보길 추천한다는. 반가운 마음에 SNS로 보내준 책의 표지를 보는 순간 선뜻 거부감이 먼저 들었다. 내키지 않았지만 책의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서점으로 향했다가 책이 놓여 있는 코너에서 또 한번 맥이 풀렸다. 왜일까? 추천 받은 책은 물론, 나란히 놓여진 질병관리 분야 책들이 모두 일본작가의 번역본들 이었다. 식생활 문화가 다른 일본의 책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데에 왠지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근대 서양의학은 두 가지 경로를 통해 조선에 유입되었다. 구미를 통한 선교의료와 일본을 통한 식민지 의료가 그것이다. 일제는 대한제국이 추구해 오던 의료정책을 좌절시키고 본격적인 식민지 의료체계 구축을 위해 통감부가 주체가 되어 대한의원을 설립했는데, 이는 대한제국의 황제권을 부정하는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특히, 1902년 동아동인회는 설립 목적이 "아시아 제국에 대해서 의학, 약학 및 이에 수반하는 기술을 보급하여 그 민중의 건강을 보호하고, 겸해서 그들과 교의를 돈독히 하며, 동양의 평화를 확보함으로써 근대문명의 영역으로 유도한다."는 것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1907년 대구와 평양에 동인의원이 개원을 하게 되었다. 일제의 식민지 개척이라는 정책에 기여하기 위하여, 사실상 민심유화정책의 일환으로 이른바 '시혜 의료'의 형태로 근대의 서양의학이 도입되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최근 일본의 수출규제와 백색국가 제외 결정에 항의하며 경제분야에 기술독립을 하자는 목소리가 높다. 의료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일본은 서양의학을 받아들이면서 서양과 다른 자국민을 대상으로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여 그들만의 풍부한 자료를 축적하였다. 중요한 것은 그들은 자신들의 자료를 신뢰하고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전체적인 의료 수준이 일본에 비해 떨어지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일본의 연구결과를 비판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 문제는 우수한 우리의 연구자료가 있는데도 이를 활용하지 못하고 여전히 일본의 연구결과를 더 신뢰하는 관행에 있다. '식민지 의료'의 부끄러운 역사에서 벗어나 '건강 주권'(主權)을 회복하는 길은 하루빨리 이러한 관행에서 벗어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이장훈 경북대병원 순환기내과 교수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