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나무와 창의성] 9월의 나무: 회화나무

강판권(계명대학교 사학과 교수)
강판권(계명대학교 사학과 교수)

나무는 세상의 생명체 중에서 가장 진실한 존재다. 그래서 어떤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간다. 나무가 사는 모습을 관찰하면 행복하게 사는 법을 터득할 수 있다. 중국 춘추시대의 공자와 노자는 자신의 핵심 사상인 인과 도를 나무에 비유했다. 그들이 삶의 철학을 나무에서 찾은 것은 나무의 질박한 모습에 감동했기 때문이다.

인류의 선각자들이 나무를 보면서 길을 찾은 것은 나무가 자신의 본성대로 살아가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공자가 살면서 가장 싫어했던 것은 교언영색(巧言令色)이었다. 교언영색은 사실을 사실대로 얘기하지 않고 상황에 따라 입장을 바꾸는 것을 말한다.

공자는 어지러운 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해 진실을 얘기하지 않고 거짓을 일삼는 모습에 진저리가 났다. 특히 공자는 권력자 앞에서 자신이 배운 것을 굽혀서 세상에 아부하는 곡학아세 자들에게 질려버렸다.

춘추전국시대의 사(士)들이 천하의 중심에 설 수 있었던 것은 어떤 권력자 앞에서도 당당하게 자신의 입장을 얘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 덕분에 2천5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인류의 스승으로 추앙받고 있다. 사는 천자와 제후 다음의 주나라 봉건시대 마지막 지배 신분이었다.

주나라는 나무의 종류에 따라 죽은 자의 신분을 구분했다. 죽은 자를 묻은 무덤은 세월이 흐르면서 점차 사라질 수 있지만 나무는 아주 오랫동안 존재할 뿐 아니라 죽으면 다시 심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주나라에서는 천자의 무덤에는 소나무를, 제후의 무덤에는 측백나무를, 사의 무덤에는 회화나무를, 백성의 무덤에는 버드나무를 심도록 했다.

신분에 따라 나무의 종류를 달리한 것은 나무도 신분처럼 격이 다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천자와 제후의 무덤에 심은 소나무와 측백나무는 늘푸른큰키나무라는 공통점이 있고, 사와 백성의 무덤에 심은 나무는 갈잎큰키나무라는 공통점이 있다. 회화나무를 흔히 '학자수'(學者樹)라 부르는 것도 바로 주나라 봉건사회의 유산이다. "회남자" '시칙'에서는 9월의 나무를 회화나무로 삼고, 할 일을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이달에는 초목이 누렇게 시들고 잎이 떨어지니, 나무를 베어 땔감으로 삼게 한다. 또 겨울잠을 자는 생물들이 모두 땅속으로 들어가니, 이에 형벌의 집행을 재촉한다. 그리하여 죄 있는 자는 남김없이 모두 처벌하고, 국가에서 부당하게 받은 월급과 연금을 환수한다. 국경에서 도읍지에 이르는 모든 도로를 정비하고 소통시킨다.

콩과의 회화나무는 중국 주나라 및 송·명·청 왕조와 우리나라 조선 왕조의 문화를 이해하는 데 아주 중요한 나무다. 주나라에서는 신하들이 천자를 알현하기 전에 나무를 심어서 신분에 따라 그 앞에 대기하도록 했다. 제후 중에서도 가장 높은 삼공(三公), 즉 태사·태부·태보는 회화나무 아래에, 구경(九卿)은 가시나무 아래에 서서 대기하도록 했다.

그래서 삼공을 '삼괴'(三槐)라 부른다. 이 같은 사례는 중국 북송의 소식, 즉 소동파가 쓴 "삼괴당명"(三槐堂銘)에서 확인할 수 있다. 우리나라 창덕궁 내에 8그루의 천연기념물 회화나무가 살고 있는 것도 바로 주나라의 유산이다.

경북 성주군 초전면 고산리 백세각 안의 세 그루 회화나무를 비롯해서 우리나라 전국의 성리학 공간에 회화나무가 살고 있는 것도 모두 주나라의 문화유산이다. 성리학 공간의 회화나무와 관련해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우리나라의 경우 중국과 달리 회화나무를 느티나무로 인식한 사례가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회화나무를 비롯한 성리학의 상징나무는 서원과 향교 및 정자의 문화를 이해하는 데 아주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조선시대 전공자들조차도 아직 성리학 관련 공간의 상징나무를 문화재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2019년 7월 6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9곳 서원의 상징 나무에 대한 가치는 반드시 높게 평가해야 하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예컨대 경북 경주의 옥산서원은 우리나라 서원 중에서도 회화나무가 가장 많은 곳이다. 반면 경북 안동의 도산서원 서광명실에 살던 500살 정도의 회화나무는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다. 죽은 회화나무라도 반드시 보존·처리해서 문화재로 관리하고 있어야 할 뿐 아니라 그 자리에 다시 후계목을 심어 도산서원의 상징나무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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