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물고기 모양으로 깎아 만든 나무물고기인 목어(木魚) 그림이다. 목어는 불교의식에 쓰이는 사물(四物)의 하나로 몸통은 물고기지만 머리는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이어서 사실은 용두어신(龍頭魚身)이다. 이 목어를 두드려 내는 소리로 물속의 모든 생명을 제도한다고 하며, 항상 눈을 뜨고 있는 물고기 형상에 언제나 깨어 있는 수행자가 되라는 뜻을 담았다고도 한다. 절에 가면 범종각 안에 매달려 있는 이 나무물고기가 눈길을 끌고, 상징하는 의미도 깊지만 그림으로 그린 화가는 많지 않다.
이번 대구미술관 '박생광'전에 '목어'와 '목어 밑그림'이 함께 나란히 걸려 비교 감상할 수 있다. '목어 밑그림'은 나무물고기와 단청한 기둥을 그의 손이 바로 포착한 생생한 민낯의 필력이고, '목어'는 작품화에 대한 심사숙고, 채색, 공간 구성, 배경 처리, 낙관 등을 거쳐 아름다움을 한껏 고조시킨, 말하자면 풀 메이크업한 실력이다. 밑그림의 단단하고 우직한 선질(線質)은 그의 작가적 심성을 보여주고, 완성작은 형태를 해석한 굵은 주황색 윤곽선으로 붉은색, 노란색, 녹색, 청색, 흰색 등을 감싸며 불교적 소재를 소화한 한국성(Koreanity)이 민족적 감흥을 환기시킨다.
박생광, 이 이름 석 자는 현대 한국화 중 채색화를 짚을 때 감사의 심정으로 떠올려진다. 만약 한국 채색그림의 전통을 창조적으로 자기화한 박생광이 없었더라면 얼마나 허전하고 부끄러웠을까. 불교와 무속의 종교적 이미지, 역사인물화와 민화 모티프 등 그의 독자적 소재는 필선으로 이루어진 구성적 디자인과 강렬한 채색을 활용한 자신만의 스타일로 완성되었다. 절집의 불화와 단청이라는 역사적 미술에 담긴 거대 서사인 민족적이고, 민중적인 감정을 박생광은 칠순의 나이에 이르러 자신의 서사로 완성해 낸 것이다.
20세기 한국화 분야 작가들 가운데 박생광과 같은 해인 1904년에 태어난 이응노, 김용준이 함께 떠오른다. 이들이 광복을 맞았을 때 42세의 나이였다. 우리의 역사와 전통을 뿌리에서부터 단절시키고 바탕조차 왜곡하고 우리말까지 말살했던 일제 군국주의의 '학교'에서 배우고 자라 사회활동을 한 그들이다. 한 명의 작가가 탄생하기란 어느 시대이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이들이 극복해낸 암흑은 그 어떤 시대보다도 짙었다. 동갑인 박생광, 이응노, 김용준의 행로는 각각 달랐다. 그러나 이들의 성취는 '한국인인 화가'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지속적으로 성찰했기 때문에 있을 수 있었다.
"역사를 떠난 민족은 없다. 전통을 떠난 민족은 없다. 모든 민족예술에는 그 민족 고유의 전통이 있다." 박생광의 말이다.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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